책소개
『마을』 5호에서는 자본주의 경영 논리에 입각한 국가의 농업정책이 초래한 농촌 소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농민과 주민을 자발적 공동 주체로 조직하는 총제적 농업 형식인 ‘마을농업’을 제안한다. 농촌 사람들 스스로 마을농업을 제안할 수밖에 없는 사회역사적 조건을 검토하고, 실천 방안을 농촌 현장 사례에 입각해서 논의한다. 또한 농촌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빼어난 산문들과 충실한 실험보고서, 십여 년 전 원전 주변 마을을 기록한 작가 정주하의 사진들, 그리고 공동체와 커먼즈 문제에 대한 작가 함성호와 장정일의 글 등 엄선된 읽을거리를 담았다. 이 책은 기후위기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혐오가 지배하는 시대에, 농업과 농촌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새로운 문명적 통찰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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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
지금 농촌은 국가 정책이 초래한 양극화·초고령화·인구감소로 인해?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다.?국가 정책의 근본적 변화만을 기다리기에 농촌 상황은 너무 위급하다.?따라서 농민과 주민이 스스로를 주체로 조직하는 공동활동과 마을자치를 통해 농업·농촌을 지속해갈 ‘마을농업’이 필요하다.
“마을농업을 제안한다”는 주제 아래 배치된 트임의 글은 모두 네 편이다. 그 구성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마을농업 제안의 현실적 당위성을 제안하고, 근대 이전 한국 농촌 사회에서 이뤄지던 공동농업 활동인 두레와 품앗이를 역사적으로 검토한다. 이어서 일본 집락영농의 세부를 검토하면서 한국 현실 적용에서의 시사점을 살피고, 정부가 최근에 추진하는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이 마을농업의 구체적인 한 실천 영역으로서 수행되어야 함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벼림(농업·농촌·농민을 주제로 하는 연속좌담)에서는, 마을농업이 필요한 이유를 농촌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관련해서 세부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트임에서 총론의 성격을 띠는 구자인의 글 「왜 마을농업인가」는, 먼저 그간의 농촌정책의 실패와 급박한 현상황을 진단한다. 필자는 농촌 소멸 위기의 원인이 국가가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으로 지역정책을 주도한 데 있다고 본다. 그로 인해 농업과 농촌의 순환적 연결고리가 깨지고, 농업이 ‘산업’의 일부로 전국적·전지구적 시장경제에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제안된 마을농업은 개별 농가 단위의 농업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마을 주민의 합의 속에 농업 활동의 전 과정을 공동으로 연결해나가는 농업 형식이다. 필자는 마을농업이 가능하기 위한 경로로서 주민 간 합의에 의한 농지 공동이용과 공동관리, 농기계의 공동소유와 공동이용을 든다. 대가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농촌 현실을 무시하고 개별 농가에 지나친 역량을 요구하는 정부의 6차산업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을 단위의 6차산업화를 위한 새로운 형식인 ‘마을농업’이 필요함을 제안하고 그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배영동의 글 「전근대 농촌 사회의 두레 다시보기」는 근대 이전 농촌의 공동노동 방식이었던 두레와 품앗이를 역사적으로 재검토한다. 근래 공동체와 공동성 등이 강조되면서 ‘두레’가 긍정적·이상적 협업방식으로 소환되는 경향이 있다. 필자에 따르면, 두레가 활성화된 배경은 조선 후기에 전쟁과 자연재난 등으로 피폐해진 농촌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품앗이가 민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해 서로의 노동을 합리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이었던 데 비해, 두레는 병농일치제 사회인 조선에서 병영의 일사불란한 지휘체제를 통해 강요된 윤번제 농업노동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다. 따라서 두레가 전통으로 내려오는 이상적 협업방식이라는 해석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필자는 고령화와 인구감소, 정부의 대농 지원정책에 의해 위기에 처한 현재의 농업과 농촌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품앗이 정신과 두레의 전근대적 전통을 현대화한 소농 위주의 공동경작과 공동분배가 이뤄지는 농업 형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유정규의 「일본 집락영농의 현황과 시사점」은, 현재 한국 농촌과 유사한 위기에 직면했던 1990년대에 일본 정부가 시행한 집락영농 정책의 현황과 세부를 검토한다. 집락영농은 농지·농기계의 공동이용 및 공동관리를 통한 공동 생산 활동으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부수 효과로서 마을 주민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많은 주민이 다양한 형태로 농업에 참여해서 ‘은퇴가 없는 평생 현역 보장’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형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1970년대에 일본에서 실패한 기본법 농정 이념과 방식을 1990년대에 가져와 농업구조개선사업을 펼쳤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농촌의 많은 문제들이 생산되었다. 필자는 농지와 농기계를 소수의 전업농에게 몰아주고 나머지 농민들의 은퇴를 장려하는 한국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일본 집락영농 사례 참조가 필요하다고 권한다.
김정섭의 「농업환경 보전과 마을농업」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의 내용을 검토하면서, 지역사회의 농민·주민의 숙의와 합의된 실천을 전제로 하는 집합적 활동인 마을농업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먼저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을 제시한다. 이어서 필자는 정부가 만든 시행 세부 내용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 뒤, 농업환경보전을 농촌 지역사회의 자율성과 공동체성을 존중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마을농업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2
포토에세이-한국 근현대 마을공간 변천기에 정주하의 사진연작 《불안, 불-안》 중에서 선별한 사진들을 싣는다. 정주하의 사진들에서 우리는, 한국 자본주의의 맹렬한 심화 과정에서 생산된 마을 공간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설명 없는 사진은 메시지를 전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경북 경주와 울진, 전남 영광 지역의 원전 주변 마을 공간과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한 《불안, 불-안》의 사진들은 사진 설명이라는 구속이 그다지 필요치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원경으로 자리잡은 원자로 돔들이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곧바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우리를 ‘뒤늦게 그리고 미리’ 찾아왔다. 정주하가 이 사진들을 촬영한 몇 년 뒤 후쿠시마의 원전이 폭발했다. 후쿠시마 이후 모든 원전 주변 마을과 우리의 미래는, 후쿠시마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3
스밈-농촌으로부터의 첫 글인 길종각의 「귀농 20년, 기억나는 말들」은 농업과 농촌 생활에 뜻을 품고 귀농이라는 결단을 감행한 귀농민이 농촌 현실과 부딪히면서 20년간 겪어온 환멸과 분투의 기억을 유머러스하고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읽은 뒤에 사무치는 착잡함은 단순한 감상이 아닐 것이다.
금창영의 「소농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대농이 되지 않으면 농사지어서 먹고살기 힘든 농촌 현실에서 소농으로서 버티는 이유를 피력한다.
홍순명의 「「윤재영 씨」, 그 뒤」는 지난 호에 이어 여전히 생생하고 아름다운 필치로 하늘공동체에서 기거하는 사고무친의 지적장애인 윤재영 씨를 그려낸다.
정민철의 젊은협업농장실험보고서 「협동조합과 젊은협업농장」은 젊은협업농장을 기존의 영농조합 방식이 아니라 협동조합 형식으로 만들어낸 이유와 그 특징들을 세밀하고 흥미롭게 서술한다.
함성호의 「이야기가 만드는 인간과 공동체의 가치」는 ‘삶과 앎’의 순환(생태적 질서)을 지속하는 데 주효한 ‘이야기’라는 형식의 현대적 의미를 해석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적 형식으로서 마을의 공동성을 회복하는 데 긴히 필요한 문화적 장치임을 제안한다.
조대성의 「꿈이 부담스러운 나이」는 까마득한 선배 농민 이해극의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40여 년의 농사 인생(『미련해서 행복한 농부-농부 이해극의 유기농, 통일농업, 발명 이야기』)의 세목을 짚으면서, 어려워만 가는 농촌에서 소농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장정일의 「생태를 보호하는 법과 ‘생태적 법질서’」는 프리초프 카프라와 우고 마테이의 뛰어난 공저서 『최후의 전환-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커먼즈와 생태법』을 검토한다. 필자에 따르면, 이 책의 공저자는 상호의존적·전체론적 세계관과 연결되었던 전근대 서유럽의 법(의 생태학과 ‘생태적’ 질서)이 자연과 커먼즈를 기본으로 이루어졌지만, 근대법이 분절적·기계론적인 근대 자연과학 논리에 의해 지배되면서 자연과 공동체를 파편화·침탈하는 도구로 변질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법질서 자체가 생태적으로(커먼즈를 법 중심에 두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필자는 “법의 생태적 디자인”이 사람들의 구체적 필요와 다양한 커머닝(사회 모든 성원에게 개방된 자연적·문화적 자원을 돌보고 향유하는 사회 정치적 활동)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책의 공저자가 생태적 법질서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커먼즈를 법 중심에 두는 것”의 뜻이 자연·생태 보호뿐 아니라 근대문명이 초래하는 크고 작은 참사와 재난의 현장과도 연대할 수 있게 하는 생성적인 것임을 읽어낸다.
[책 속으로 이어서]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농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고참에게 “넌 뭐하는 놈이냐?”라는 질문을 들은 이후로, 중년으로 접어든 나에게 인생의 화두가 되는 질문이다. 저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책을 통해서 얻은 힌트를 써보자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 성공에 도취하고 자만하거나, 혹은 성공을 부담스러워하고 거부하지 말자는 것.
- 174쪽, 「꿈이 부담스러운 나이」, 조대성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독자라면 『최후의 전환』의 내용과 논리 전개에 꽤 익숙할 것이다. 특히 상호연관적이고 전체론적인 세계를 분절적·기계론적 세계로 재설계한 근대의 자연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생태 위기의 원인을 찾는 논리가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복습에 머물지 않는다. 서구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자연과학과 법학 간의 끈질긴 유사성을 발견한 지은이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과학과 법이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 180쪽, 「생태를 보호하는 법과 ‘생태적 법질서’」,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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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열며
농업과 농촌의 상호지속은 어떻게 가능한가 | 박영선
트임 | 마을농업을 제안한다
왜 마을농업인가 | 구자인
전근대 농촌 사회의 두레 다시 보기 | 배영동
일본 집락영농의 현황과 시사점 | 유정규
농업환경 보전과 마을농업 | 김정섭
벼림 | 농업·농촌·농민 연속좌담 4
마을과 농업 | 구자인, 김정섭, 정민철
포토에세이 | 한국 근현대 마을 공간 변천기 3
불안, 불-안 | 정주하
스밈 | 농촌으로부터
귀농 20년, 기억나는 말들 | 길종각
소농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 금창영
「윤재영 씨」, 그 뒤 | 홍순명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 실험보고서 3: 협동조합과 젊은협업농장 | 정민철
일하는 노자 5
이야기가 만드는 인간과 공동체의 가치 | 함성호
서평 | 책 너머 삶을 읽다
꿈이 부담스러운 나이 | 조대성
생태를 보호하는 법과 ‘생태적 법질서’ | 장정일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