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무도 말하지 않던 금기의 세계사!
조선의 영조와 정조, 청나라의 강희제와 옹정제와 건륭제, 프랑스의 루이14세와 루이15세는 모두 각 나라의 번영을 이끈 통치자였으며,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재위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 세 나라의 중흥기는 18세기 말에 접어들어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서양 국가 모두에서 같은 시기에 흥망성쇠가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말하지 않는 세계사』의 저자는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지구의 온도는 지속적으로 올라 농사짓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고 말한다. 한편 18세기 말에 들어 지구의 평균 온도가 떨어졌는데, 전 세계적으로 흉년이 잦았다. 이는 각 나라의 혼란기와 일치한다. 어쩌면 국가의 흥망성쇠는 왕의 덕과 역량보다 기후에 더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처럼 단선적인 역사, 단일한 원인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물 사이의 관계, 사회의 변화, 상황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더욱 재미있게 가공된 이야기가 아닌 일반적으로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모아 ‘새롭게 보이는 세계사’를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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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789년 대흉년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성군으로 칭해지기 위한 조건은 덕과 능력이 아니라 온화한 기후?
조선의 영조와 정조, 청나라의 강희제와 옹정제와 건륭제, 프랑스의 루이14세와 루이15세,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각 나라의 번영을 이끈 통치자였다는 것. 그리고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재위했다는 것. 세 나라 모두, 그것도 거의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건 단순한 우연일까? 우연의 일치로 비슷한 시기에 성군이 등장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 세 나라의 중흥기는 18세기 말에 접어들어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조선은 세도정치와 민란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을 기점으로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해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전쟁과 혁명으로 혼란이 거듭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서양 국가 모두에서 같은 시기에 흥망성쇠가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국가의 번영과 안정은 농업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의 작황에 따라 경제와 민심이 달라졌다.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바로 날씨다. 농사가 주산업이었던 시절, 날씨가 좋으면 농사가 잘되어 경제가 성장했고, 날씨가 추워 농사가 잘 안되면 경제가 어려워졌다.
지구의 온도는 16세기 말부터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해 18세기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농사짓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농산물 수확량이 늘어나고 사회 전체의 소득이 증가했다. 이 시기는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 옹정제, 루이14세 등의 재위 기간과 일치한다. 한편 18세기 말에 들어 지구의 평균 온도가 떨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흉년이 잦았다. 이 시기는 각 나라의 혼란기와 일치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에는 대흉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였는데, 이는 프랑스혁명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어쩌면 국가의 흥망성쇠는 왕의 덕과 역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의 발전을 위해 힘썼던 영조와 정조에게는 다소 불쾌할지도 모를 이야기다. 국가와 민심을 잘 다스리지 못해 곳곳에서 원망을 샀던 왕이라면 이 이야기를 빌려 당시 국가의 혼란이 자신만의 탓만은 아니었다고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책은 단선적인 역사, 단일한 원인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관계, 사회의 변화, 상황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다시 쓴 세계사’를 통해 독자는 ‘새롭게 보이는 세계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별다른 功도 없던 맥아더가 왜 미국의 대표로 항복문서를 받았을까?
1945년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호에서 일본 외무장관 시게미쓰 마모루는 항복 문서에 서명한다. 이때 더글라스 맥아더는 미국을 대표해서 그 자리에 섰다. 이 장면은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그 후 맥아더는 태평양전쟁의 승리의 상징이 돼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미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은 맥아더가 아니라 해군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였다. 니미츠가 구사한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전략의 성공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가 가능했던 것도 미 해군의 전략에 의해 일본이 점령했던 ‘티니안 섬’을 탈환하고, 공습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맥아더가 미군의 대표 자격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맥아더는 필리핀을 일본군에게 빼앗기고 호주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그 후 필리핀 탈환에만 매달렸다. 필리핀은 태평양전쟁의 주전장이 아닌데도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정치적 쇼맨십에 능했던 맥아더가 강력히 주장해 항복문서 서명식의 주인공이 됐던 것이라고 한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 전세를 뒤집었지만 중공군의 참전가능성을 무시해 다시금 후퇴하게 되자 아예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확전을 불사하고자 했던 것도 맥아더 특유의 오기였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말하지 않는 세계사』는 이처럼 역사에서 웬만큼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모았다. 역사와 관련해 흔히 통용되는 이야기, 혹은 상식 속에는 사실과 다른 것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비주류의 견해는 묻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대사나 역사기록 이전의 역사,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에는 현대의 지식체계에서 설명하기 어렵거나 기존에 상식을 뒤엎는 사례가 다수 있다. 그리스 문명이 고대 이집트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부정하는 서양의 주류 역사학자들, 단 한 번도 외적을 막아내지 못했던 만리장성의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중국의 주류 역사학자들. 자신이 보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만 일반화하려는 모습이다.
일반인들은 역사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재미있게 가공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다. 이런 사실의 가공과 뒤틀림을 아는 것도 역사 공부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지식에 맞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퍼즐에 끼워 맞출 수 없는 비밀이야기가 펼쳐진다.
○ 1장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야기한다. 특히, 농업에 의존하면 살아가던 근대 이전에는 당시의 기후가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일 년 전에 프랑스에는 대흉년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프랑스혁명의 원인을 프랑스의 재정 적자, 귀족의 횡포, 시민계급의 성장으로만 알고 있다.
○ 2장은 동양의 역사에서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관시’라는 중국인들의 문화가 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중국의 정치와 국민들의 삶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오늘날 중국의 부정과 비리가 척결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관시’를 말하지만 사실 ‘관시’는 정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중국 국민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 이 책의 3장은 세계사 중에서도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지리상의 발견과 맞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롭다. 인류가 남극을 최초로 발견하기 이전에 이미 고대지도에 남극의 해안선이 정밀하게 묘사되어있고, 같은 시기에 살지 않았던 인간과 공룡이 발자국 화석으로는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주류를 이루는 이야기들과 맞지 않는 흥미로운 문화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 4장은 말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사 이야기. 흔히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끌고 왔다고 지탄받던 아메리카의 노예가 사실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노예였다는 것, 히틀러의 인종차별보다 덜하지 않았던 미국의 유대인과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의 역사 등을 말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군인으로만 알려진 맥아더의 과오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밝힌다.
○ 5장은 경제적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6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사건들에 집중한다. 프랑스는 전쟁 후에 과거 청산을 잘한 나라로 꼽히지만 사실 그 과정에는 광기의 폭발이 있었다. 또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이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이 책의 마지막 7장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구체적으로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는 사치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작곡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의 기록물은 사실 다빈치만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학습 노트였다. 또 다윈 이전에 진화론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유명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가공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책속으로 추가
『삼국지연의』의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중원 출신이 아닌 사람은 여포, 동탁, 곽사, 이각 등이다. 이들은 모두 삼국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으로만 나온다. (…) 단지 여포, 동탁, 이각, 곽사 등에 대해서만 이들의 잘못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민족 출신, 중국 외곽 출신들을 중국 중원 출신들은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는 항상 한족 중심주의이다. 중원이 아닌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오랑캐이다. 한족이 아닌 사람들, 오랑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에서의 역사 서술은 모두 이런 한족, 중원 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중국 역사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알려진 인물이 진짜 나쁜 인물인지, 아니면 중원 출신이 아닌 오랑캐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오랑캐는 항상 나쁜 사람이고 비난을 받는 존재이다. 아무리 공을 세웠어도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난다. 여포와 동탁은 실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73~74p, 「여포와 동탁의 억울한 사연」에서
1996년에 영국 법의학 고고학자들은 이집트 미라들을 분석했다. 미라들의 시체들에 대해 화학적 분석을 실시했는데, 몇몇 미라에서 담배 흔적이 나왔다. 머리카락과 신체 조직 등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 나타나는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또 미라에서 코카인도 검출되었다.
담배와 코카는 신대륙 발견 이후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유라시아 대륙에 알려지고 전파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집트 미라에 담배와 코카 흔적이 있는 것일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집트 당시에도 이집트 등 유라시아 국가들과 남아메리카 국가들 간에 교역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유라시아 국가와 아메리카 대륙 간 교역이 있기 위해서는 대서양을 건너야 한다. 2000년도 훨씬 전에 대서양을 건너 교역이 있었다는 것은 현재 알려진 역사로는 도무지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집트 미라들에 남아있는 담배와 코카 흔적은 공식적으로는 잘 말하지 않는 고고학적 증거가 된다.
-112p, 「인류의 역사에 어긋나는 고고학적 증거들」에서
서양이 인간 배설물 문제를 해결한 것은 수세식 화장실이 개발된 이후이다. 17세기에 영국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개발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유럽 사회에 보급된 것은 한참 후이다. 그리고 인간의 배설물이 해결되었다 해도 말의 배설물까지 해결되지는 못했다. 거리는 여전히 배설물로 가득 차있었다. 1890년 미국 뉴욕에는 6만 마리의 말이 있었다. 이 말들은 하루에 1250톤의 배설물과 6만 갤런의 오줌을 길거리에 뿌렸다. 또 하루 수백 마리의 말들이 거리에 쓰러져 죽었다. 말의 배설물까지 해결된 것은 교통수단으로 자동차가 일반화된 이후이다. 자동차는 1900년대 이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자동차가 점차 증가하면서 말들은 거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말이 사라지면서 말의 배설물들도 거리에서 사라졌다. 서양 거리에서 배설물이 없어지게 된 것은 이제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자동차는 매연을 발생시켜 환경에 큰 피해를 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동차는 거리의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주는 친환경 기기였다. 결과적으로 거리에서 배설물을 제거하고 깨끗한 거리를 만든 것은 자동차였다.
-128~129p, 「배설물의 사회사_화장실, 퇴비, 그리고 자동차」에서
현대전 이전 전쟁의 특징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쟁에서 전투로 인해 사망하고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병이 나서 사망했다. 병으로 사망한 병사들이 적과의 전투로 사망한 사람들보다 더 많았다. 사실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병사들이 얼마나 더 열심히 잘 싸우느냐가 아니었다. 병에 걸려서 죽는 병사가 얼마나 되느냐가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었다.
과거 전쟁에 대한 기록에서 전투로 사망한 병사와 질병으로 사망한 병사 수를 제대로 구분해서 기록한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전쟁 사망자 중에서 적과의 전투로 사망한 사람과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을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투로 인한 사망과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구분해서 기록한 몇몇 전쟁 자료들을 보면 전투로 인한 사망자보다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매번 더 많은 것으로 나온다.
-128~129p, 「전쟁에서 적군보다 무서운 것은…」에서
백인 노예상들은 이 지역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을 납치하러 다닌 것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추장들에게 돈을 주고 샀다. 흑인 노예들은 그래서 별 반항 없이 아메리카로 가는 배에 올랐고, 아메리카 노예 시장에 나왔다. 자기는 노예라고, 반항하고 대들지 않았다. 자기는 원래 노예였고,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되는 것일 뿐이다.
-155p, 「아메리카 노예는 아프리카 노예였다」에서
맥아더는 일본군을 무찌른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군은 맥아더의 육군으로부터는 피해를 받은 것이 없다. 일본군을 항복하게 한 것은 미 해군이었고, 미 해군의 지휘자는 체스터 니미츠였다. 맥아더가 영웅으로 올라선 것은 육군과 해군 중에서 육군을 더 우선시하는 군대 내의 전통, 그리고 맥아더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었다.
-183p, 「맥아더가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까?」에서
현재 프랑스의 과거 청산은 너무 심했다는 평가도 많다. 정말로 독일 편을 들었던 사람을 숙청한 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숙청을 당했다. 제대로 된 재판 없이 당시 레지스탕스들의 독자적인 판단만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때 숙청당해 죽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현재까지 제대로 추정이 안 된다. 사망한 사람의 수는 1만 명에서 10만 명까지 추정된다. 제대로 절차를 거쳐 시행된 처형이 아니라 프랑스 각지에서 마음대로 이루어진 처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프랑스 여성들에 대한 보복을 잘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독일군을 만난 것이라 해도, 젊은 여자가 남자들을 만났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특히 젊은 여자들을 공개적으로 삭발을 시키고 나체로 거리를 끌고 다닌 것은 처벌이 아니라 광기였다. 독일에 대해 협력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여자들에 대한 복수였다. 프랑스 남자들은 전투를 하고 레지스탕스가 되는 등 어렵게 전쟁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많은 여자들은 독일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잘 지냈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 뿐이다.
-252~253p, 「프랑스의 과거 청산이 남긴 빛과 그림자」에서
원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람들에게 다방면의 천재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는 다빈치가 죽은 지 300년 정도가 지나서 출간되었다. 이 노트에는 정말로 헬리콥터, 낙하산, 인체도 등이 그려져 있었고, 다방면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들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대를 앞서간 다방면의 천재로 알려졌다.
19세기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는 정식으로 연구되기 시작한다. 이 노트 연구에서 알게 된 것은, 다빈치의 노트가 다빈치가 스스로 발견한 것을 기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빈치가 혼자 생각하고 사색해서 발견한 것을 적은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자기가 좋았던 것, 감명 깊은 것들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는 창조 노트가 아니라 학습 노트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적는 노트와 같은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랬기에 다방면에 대한 스케치와 글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방면의 혁신가, 아이디어맨이자 창조자였다고 볼 수는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지 자기가 본 책들을 잘 정리한 노트를 만들었을 뿐이다.
-284p,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말 다방면의 천재일까?」에서
카사노바가 죽은 후 이 완결되지 못한 자서전이 공개가 된다. 하지만 카사노바 자서전의 모든 내용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카사노바가 젊을 때 여자와의 염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쓴 부분들이 인기가 있었고 유명해졌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카사노바 자서전 중에서 이 여자와의 이야기 부분만 추려내서 책을 편집했고, 바람둥이 카사노바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카사노바의 회고록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야드 총서에 속해 있다. 플레이야드 총서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작가들의 전집이다. 카사노바 자서전 출간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풍인지를 조사했다. 카사노바가 졸업했다는 대학, 사업 등이 정말 진짜인지 아닌지 검증을 했다. 그런데 검증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 그리고 카사노바는 왕, 귀족, 부유층만이 아니라 창녀, 도박꾼, 노동자 등 사회 하층 사람들과도 계속 만나고 다녔다. 그래서 18세기 유럽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카사노바 자서전은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카사노바 자서전에는 자기와 관계가 있었던 여자 수백 명이 나온다. 카사노바가 바람둥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단순히 바람둥이라고 하기에는 삶이 무척이나 다이내믹했다. 특히 요리 부분, 저술가 부분에서 카사노바는 유럽에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지금도 카사노바를 추종하는 카사노비스트들이 수백 명이 존재한다.
-294~295p, 「18세기의 ‘뇌섹남’, 카사노바」에서
생물들을 채집하던 1858년 2월, 당시 월리스는 테르나테 섬에 있었다. 병에 걸려 고생하는 와중에 생물들이 서로 다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소위 적자생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물은 변화하고, 이 변화에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게 된다- 개념이 떠오른다. 월리스는 이 생각을 논문으로 쓴다. 보통 학자들은 이렇게 논문을 쓰면 학회에 보낸다. 학회는 그 논문을 평가해서 학회지에 싣는다. 하지만 월리스는 그 논문을 학회에 보내지 않고 다윈에게 보낸다. 당시 다윈은 영국에서 유명한 생물학자였다. 이에 반해 월리스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초보자이고 아마추어였다. 자신의 생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다윈에게 먼저 원고를 보낸다. 그 원고는 3월 9일 테르나테 섬을 출발했다.
(…) 1858년 7월 1일 린네 학회에서는 먼저 다윈의 논문이 발표되고 그 다음에 월리스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다윈의 논문이 먼저 발표된 것은 다윈이 먼저 이 진화론 개념을 생각했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해서 진화론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다윈으로 알려진다.
(…) 진화론을 발견한 것은 다윈인가 월리스인가. 월리스의 편지봉투가 사라진 현재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계의 원칙에서 볼 때는 논문을 먼저 쓴 월리스가 우선권이 있는 것이 맞다. 다른 사람의 논문을 받고 읽은 후에 자기도 발표하기로 했다는 것은 최소한 학계에서는 인정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298~303p,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에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에 맞는 이야기만 선별해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주장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역사 이야기에서도 그렇다. 역사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주장 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뒤틀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재미를 주기 위한 에피소드 역사, 가공된 역사도 있다. 어떤 것이 가공되고 뒤틀린 이야기인지를 알아가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들이 세계사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315p, 「나가는 글_역사의 가공과 뒤틀림을 아는 것이 주는 재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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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들어가는 글_알고는 있어도 차마 말하지 않는 역사에 대하여_ 07
1.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1789년 대흉년이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_15
전쟁은 과학 기술 발달의 원동력이었다 _22
핵전쟁에서 인류를 구한 남자, 페트로프 _29
왜 잘나가던 소련은 갑자기 해체되었을까? _33
근대 민주주의는 왜 서양에서 발전했을까 ?_서양의 군주제와 동양의 군주제 _40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88 서울 올림픽 _46
2. 말하지 않는 동양사
아시아는 러일전쟁을 어떻게 보았는가_ 사회진화론 _57
동양은 과학 기술이 부족해서 서양에게 뒤처진 것일까? _63
여포와 동탁의 억울한 사연 _69
법보다 ‘관시’_중국인의 관시 문화 _76
폭력단의 두목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사회 _82
20세기 최고의 살인자는 누구였을까? _88
3. 말하지 않는 문화사
우리가 모르는 고대문명이 존재했다 _피라미드 그리고 모헨조다로 _97
혼일강리도의 수수께끼 _풀리지 않는 고대 지도의 비밀 _104
인류의 역사에 어긋나는 고고학적 증거들 _110
노아의 방주는 정말 있었을까? _지리상 발견의 의의 _117
배설물의 사회사 _화장실, 퇴비, 그리고 자동차 _124
전쟁에서 적군보다 무서운 것은 … _130
보호인가, 침탈인가? 제국주의 시대와 문화재 _136
4. 말하지 않는 미국사
미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의의 _145
아메리카 노예는 아프리카 노예였다 _152
청교도와 영국 귀족의 전쟁, 남북전쟁 _157
라이트 형제가 처음 하늘을 날았을까? _163
유대인 차별은 독일에서만 있었을까? _170
맥아더가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_177
5. 말하지 않는 경제사
자유를 위한 혁명? 돈을 위한 혁명? _187
구텐베르크는 성서 때문에 파산을 했다? _194
위대한 예술 후원자 로렌초 데 메디치 _202
정화 대함대는 세계 최강의 함대였을까? _208
야마시타 골드 _215
동양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에 뒤처지게 된 것일까? _221
6. 말하지 않는 제2차 세계대전
독재자 히틀러의 아이러니 _229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_236
독일군을 패망시킨 것은 미군일까? _242
프랑스의 과거 청산이 남긴 빛과 그림자 _248
일본은 원자폭탄 때문에 항복했을까? _254
처칠은 영국을 구한 구국의 영웅일까? _260
7. 콜롬버스가 서쪽으로 항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콜럼버스만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기 때문에 서쪽으로 항해할 수 있었을까? _269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을까? _276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말 다방면의 천재일까? _282
18세기의 ‘뇌섹남’, 카사노바 _289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_296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생계형 작곡가였다? _304
나가는 글_역사의 가공과 뒤틀림을 아는 것이 주는 재미 _310
참고문헌 _316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