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모든 책을 소중한 보물로 생각하라!”
책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날마다 책과 만나면서 책의 내용에 관심을 쏟지만 책 자체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국의 젊은 ‘책 이야기꾼’이자 스스로를 ‘진실한 독서인’이라고 표현하는 차이자위안은 자신의 저서 『독서인간』에서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보다 문화적·정신적·물질적 존재로서의 ‘책 자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간명하면서도 풍성하게 소개한다.
작게는 책의 형태, 책 냄새, 책갈피, 띠지 같은 소품에서부터 크게는 서가, 서점, 도서관 같은 책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책 읽기, 책 빌리기, 책 수집, 책 도둑질, 금서, 책장사, 책벌레에 얽힌 이야기에다 책과 영화, 책과 치료, 책과 광고 등 책 주변 풍경까지 버무려 모두 25꼭지의 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화를 펼쳐낸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 스테판 말라르메
책의 우주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한 장서가의 매혹적인 모험
기획 의도
한 진실한 독서인이 깊은 사랑으로 세운 무지개다리
책은 영혼이 있는 사물이다. 거기엔 저자의 정신세계가 드러나 있고 독자의 정신생활이 투영되어 있다. 우리는 책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가운데, 세상과 소통하고 추억을 만들고 정신의 성장을 이룬다. 이 책 《독서인간》에서 저자는 이처럼 광대하고 신비로운 책의 우주, 독서 인생의 내밀한 비밀을 들려준다. 책의 모양, 색깔, 냄새, 체온에서부터 책의 친구, 애인, 집, 여정, 그리고 책의 사상, 감정, 꿈, 운명까지 책과 관련한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다.
《독서인간》은 망망한 우주 가운데서 책이라는 존재와의 흔치 않은 단 한 번의 만남이 빚어내는 그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정신의 모험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저자의 책 이야기는 재미있고 간명하면서도 풍성하다. 작게는 책의 형태, 책 냄새, 책갈피, 띠지, 장서인, 장서표 같은 소품에서부터 크게는 서가, 서재, 서점, 도서관 같은 책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더 나아가 책 읽기, 책 빌리기, 책 수집, 책 도둑질, 금서, 책장사, 책벌레에 얽힌 이야기에다 책과 영화, 책과 여인, 책과 커피, 책과 치료, 책과 광고 등 책을 둘러싼 풍경까지 버무려 모두 25꼭지의 이야기를 통해 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화를 존조리 들려준다.
저자는 이 책이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작은 실험”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 진실한 독서인이 깊은 사랑으로 세운 무지개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우리는 책의 미학, 책의 우주, 책의 꿈, 책의 운명과 맞닥뜨린다. 거기에는 집단으로서 인류가 장구한 세월 동안 책과 함께 일구어온 문화사가, 또는 한 개인으로서 인간들이 책과 더불어 빚어온 정신의 성장사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중독성 강한 약물처럼 우리를 매혹하는 이 풍성한 책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책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유혹과 자극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책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한 줄기 책 향기가 온갖 향기를 압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보다 문화적, 정신적, 물질적 존재로서의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책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은 일종의 ‘책의 자서전’ 또는 ‘책의 회고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책 1부에서는 책의 물성이 지닌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독서의 즐거움’은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책 표지, 면지, 책날개, 판형, 삽화, 지질 같은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 한층 배가된다. 한 권의 책과 만날 때 우리는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책과 만날 수 있다. 결국 모든 독서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책은 내용과 형식이 통일을 이루고 심미와 기능이 통일을 이룬 책이다. 책은 고정된 장식물이 아니다. 독자는 독서 과정에서 책과 소통하며 서로 작용을 주고받는다.” 책에서 풍겨나는 특유의 냄새, 책의 내용을 알리고 가치를 선전하는 띠지, 독서의 진도를 표시하는 책갈피, 책의 소유를 나타내는 장서인과 장서표, 심지어 책을 갉아먹고 사는 책벌레까지 독서의 즐거움을 완성하는 일에 동참한다.
20세기 들어 책의 미를 추구하는 독립된 북디자인 이론이 서구에서 처음 출현했다. 1920년대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들 사이에 책 만들기 열풍이 불어 당시 예술계에서는 “책을 만들지 않으면 대가로 일컬어질 수 없다”라는 말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그런 풍조 속에서 피카소는 발자크의 소설집을 디자인했고 미로는 엘뤼아르의 시집을 디자인했다. 대문호 루쉰은 중국 북디자인의 개척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디자인한 책 《외침?喊》의 표지는 고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나아가 오늘날 북디자이너들은 장정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가 거기에 함께 참여하도록 이끌어 북디자인의 미적 쾌감을 창조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써 독서의 즐거움이란 피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주체적인 참여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한편 시인 네루다는 책에서 곡식의 향기, 바다의 냄새를 맡아냈다. 쇠이유출판사 편집자 아니 프랑수아는 책 냄새에서 아름다움과 사랑과 이미 가버린 시절과 따뜻했던 과거에 대한 회고를 발견해낸다. 이때 책 향기는 단순히 화학 성분 냄새가 아니라 문화적 의미까지 포함한다. 저자는 묻는다. “벗이여! 그대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펼쳤을 때 어떤 냄새를 맡는가?” 띠지는 또 어떨까? 중국의 한 잡지에서는 가수 레너드 코언의 소설 《아름다운 패자》 중국어판을 “가장 완성도 높은 책”으로 선정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띠지 문구였다. “그는 한 편의 시를 써서 소설로 위장했다.” 동서고금의 독서인들은 또한 책을 파먹고 사는 책벌레를 묘사하는 데 열중했다. 책벌레에 대한 독서인의 감정은 아주 복잡해서 그것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자는 시인 류사허가 한 말을 인용해 이렇게 설명한다. “책 사이에서 부침하고, 문자 사이에서 태어나 죽는 책벌레의 삶이 바로 우리 독서인의 모습의 투영이 아닌가?”
책의 미학이 극도로 구현되는 오늘날에는 책의 존재 형태에도 경계가 사라진다. 가느다란 실을 책의 내용으로 삼아 청각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책장 대신 거울을 끼워넣어 나와 세계를 시각적으로 성찰하게 하고, 토끼털을 이어 붙여 만든 책으로 촉각을 통해 생명에 대한 반성을 유도한다. 나아가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책”을 제작해 미각으로까지 독서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이 모든 이야기가 가닿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정신적 향유 공간과 물질적 향유 공간 두 곳에서 이중의 기쁨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서적이 창조하는 아름다움이다.”
현자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한다
2부에서는 책이 보관, 향유, 유통, 보존되는 공간인 서가, 서재, 서점,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거처’들 가운데 서가와 서재가 대단히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라면, 서점과 도서관은 다분히 공적이고 열린 공간이다.
서가는 사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가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시인 보들레르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요람은 서가에 기대어 있었다, / 그 어둠침침한 바벨탑엔 소설, 과학, 우화시가, / 모든 것이, 라틴의 재와 그리스의 먼지가, / 온통 뒤섞여 있었다. 내 키는 이절판 책만 했다.” 이처럼 한 어린아이의 기억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서가는 평생 책과 함께 살아갈 위대한 시인의 운명을 예고했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의 ‘서가’를 봐야 한다“거나 “서가는 그 주인을 비춰주는 거울이다”라는 말에서 보듯, 정신생활의 상징으로서 서가에는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정신세계가 어김없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서가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가장 좋은 서가는 실은 텅 빈 서가다. 거기엔 새 책을 꽂을 수 있는 더 많은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인들이 오래도록 꿈꿔온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상적인 서재를 갖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서재는 심신을 닦고 성품을 기르는 곳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서재 이름에 문화적, 정서적 의미가 덧붙어 시대가 발전하면서 풍성한 의미를 갖춘 문화 기호, ‘정신의 정원’이 되었다. 서재에는 심오한 뜻이 담긴 이름을 붙였는데 대부분 독서나 학문과 관련된 명칭이었다. 물론 루쉰처럼 세상을 조롱하거나 천박한 풍습에 저항하는 의미를 표현한 개성적인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루쉰은 이른바 ‘정인군자’들에게 ‘학비(學匪, 학계의 비적)’로 멸시당하자 스스로 ‘녹림대도(綠林大盜, 강호의 큰 도적)’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반격을 가했고, 마침내 자신의 서재 이름을 ‘녹림서옥綠林書屋’이라고 불렀다.” 고대 중국 독서인들은 또한 서재 건축을 예술로 간주하여 서재를 “책 향기 짙은 정신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서재는 감성 가득한 문화적 종합체로 인식되었다. 그에 반해 이성을 지향하는 서구인들은 서재를 ‘자신을 성찰하는 집’으로 인식했다. 몽테뉴의 말이다. “나는 여기 내 왕국 안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절대군주가 되고자 한다. 이 한 구석을 모든 사회, 부부, 자녀, 시민 관계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나만의 방이다. 고독이 용솟음치고 지혜가 해방된다. 이곳은 나만의 방이다. 이 공간은 순수하고 안정적이고 독재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서점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고 영향력도 상실해가고 있다. 유망하던 서점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인터넷 서점으로 전환했다.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꿋꿋이 자신의 문화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 서점들이 존재한다. “현자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한다”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산실이 되어온 뉴욕의 고담북마트(안타깝게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2007년 문을 닫았다), 1930~1940년대 모더니즘의 총본산 격이자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침대를 갖춘 파리의 셰익스피어서점, 1950년대 비트 세대 문화운동의 중심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고 인정하는 책만 판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시의빛서점 들이 그 예다. 이런 서점들은 실제 크기는 작지만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정신의 빌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서관은 먼 옛날 인간이 정신활동을 사물에 담기 시작하면서 탄생했다. 애초에 도서관은 국가나 종교단체 소유여서 극히 폐쇄적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원장이 그런 폐쇄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메디치 가문에서 도서관을 건립해 정식으로 대중에게 개방함으로써 비로소 도서관은 열린 장소가 되었다. 인류문명의 전승지이면서 후세인들이 옛사람들의 영혼과 교류하는 무대인 도서관. 거장 보르헤스는 시에서 그곳을 이렇게 묘사했다. “난 늘 상상해왔다. / 천국은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고.”
책에 우아하게 미치다
3부는 책과 나누는 아름다우면서도 때로는 미친 듯한 사랑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서치(책에 미친 바보), 서적상, 독서인, 장서가, 책도둑 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중국인들은 서치를 ‘서고(書庫, 책창고)’ ‘서록(書?, 책상자)’ ‘서전(書癲, 책미치광이)’ ‘서주(書?, 책궤짝)’ ‘서종(書種, 책인종)’ ‘서음(書淫, 책음란가)’ 등으로 표현했다. 서구인들은 ‘aesthete(책바보)’ ‘biblioklept(책도둑)’ ‘bibliolater(책숭배자)’ ‘bibliomania(애서광)’ ‘bookworm(책벌레)’ ‘booklouse(책좀)’ 등으로 쓴다. 책에 빠져든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서치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모두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일컬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애서가 청년은 여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와중에도 몰래 책을 펼쳐 읽는다.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잠시 후 다시 읽을 때 책을 뒤져 몇 쪽인지 찾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야.” 먹는 것을 줄이고 용돈을 아껴 책을 사는 검소형도 있다. “나는 일단 돈이 생기면 바로 책을 사고,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셔츠를 산다.” 신학자 에라스무스의 말이다. 프랑스 장서가 피에르 베레는 이렇게 단언한다. “당신은 책과 함께 자고 책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 서치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애서광으로 변한다. ‘보통 서치’가 목적을 가지고 책을 선택한다면, ‘애서광’은 무목적적으로 책을 소유하려고만 들며 남들과 절대 나누려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광증의 치료법 중 하나로 미친 듯이 책을 사 모아 지갑을 텅 비게 만들고 생계유지를 어렵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영국의 작은 마을 헤이온와이에 자신만의 ‘도서왕국’을 건설한 서적상 리처드 부스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 마을에는 40여 개의 서점, 10마일에 달하는 서가, 수백만 권의 도서가 있고 매년 50만 명의 여행객이 찾는다. 1977년 부스는 독립을 선포하고 헤이온와이 왕국 국왕으로 등극해 내각을 구성하고 지폐를 제작하고 여권과 우표까지 만들었다. “부스의 책장사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으며, 생계수단이 마침내는 생활태도와 인생철학으로까지 승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독서인에게 독서의 즐거움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보카치오는 “어떤 군주도 누릴 수 없고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쾌락”이라 했으며, 구양수는 “지극하도다, 천하의 즐거움이여! 종일토록 책상 앞에 앉아 있네”라고 했다. 눈앞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하는 고통스러운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내면에서 우러나야만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독서다. 명나라 진계유는 이런 독서의 3대 기본 조건으로 책이 있어야 하고, 여가가 있어야, 하며 자질이 있어야 함을 내세운다. 저자는 독서 과정에서 최고의 즐거움은 책과 사람이 하나 되어 만사를 잊는 것이라고 말한다. 린위탕(임어당)은 이백의 시집을 읽으며 그런 몰아일체의 경지를 이렇게 읊었다. “청련靑蓮(이백)의 시집은 두꺼워서 / 오래 읽으면 피곤해 누워야 하네. / 본래 시집을 베고 잠들었으나 / 깨어나니 시집이 나를 베고 있네.” 한 사람의 독서 역사는 그 사람의 정신 성장사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햄릿》을 읽으면서 느낀 감상을 연도별로 기록해놓으면 그 원고는 마침내 그 사람의 자서전이 될 것이다.”
책 빌리기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책 빌려주기를 싫어하는 것은 독서인의 보편 심리인 듯하다. 청나라 장서가 예더후이는 서재에 이렇게 써 붙였다. “책과 마누라는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독서인은 또한 책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책 빌려주기에서 낭만적인 비밀 한 가지를 발견했다. “책 빌려주기는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국 작가 니콜라스 바스베인은 장서(책 소장) 사랑을 “우아한 광기”라고 표현했다. 미친 증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아한 행위라는 것이다. 명나라 시인 왕세정은 갖고 싶은 책을 소유하기 위해 장원 한 채와 맞바꿨다. 청나라 장서가 구중용은 동지 고포충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에서 “황금을 다 뿌려 책을 모았다”라고 읊었다. 장서의 목적은 독서와 재테크 두 가지다. 하지만 책을 소장하는 일의 본질은 다른 물건을 간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보존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저자는 말한다. “책 속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사실 독서인 자신의 한 줄기 인생역정이라고 할 수 있다.”
책도둑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책을 소유하는 쾌감을 얻기 위한 것으로 대부분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서 책을 훔친다. 미국의 책도둑 스티븐 블럼버그의 장물은 나중에 FBI가 1.17킬로미터의 서가에 진열해야 할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오로지 경제적 이익을 위해 훔친다. 영국의 ‘책 약탈자’ 윌리엄 자크의 도둑질 규모는 약 20억 원에 달했다. 동기가 무엇이든 저자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어차피 똑같은 도둑놈인데 무슨 고상하고 고상하지 않은 차이가 있겠는가?” 소설가 마커스 주삭은 《책도둑》에서 책도둑에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리젤은 훔친 책으로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구원하며,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베푼다.
금서는 금기이기 때문에 더욱 끌리는 모순된 심리를 독서인에게 유발한다. 타이완 작가 양두는 이렇게 묘사한다. “처음으로 금서를 읽을 때의 느낌은 여자 친구와 처음으로 밀회를 즐길 때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금기의 땅을 향해 끊임없이 치달려간다.” 금서로 지정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1931년 중국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번역본이 금서가 되었는데 “금수와 곤충이 모두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사람과 마구 섞여 산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크게 보면 정치적 원인과 도덕적 원인이 주를 이룬다. 국민당 시절에는 금서 정책에 대응해 제목 위장 수법이 동원되었다. 예를 들면 《공산당 선언》은 《미인의 은혜》로, 《연합정부론》은 《영아 보호법》으로 위장했다.
풍랑을 피해 정박한 백일몽 속 항구
4부에서는 책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만나 빚어내는 문화적 풍경을 펼쳐 보인다. 영화, 여인, 커피, 치료, 광고가 그것들이다.
도서관과 서점은 흔히 영화에서 배경이나 소품으로 등장한다. 특히 낭만적 장소의 대명사로서 서점은 러브스토리에 제격이다. 영화 《84번가의 연인》 《폴링 인 러브》가 그런 예다. 《유브 갓 메일》은 러브스토리 이면에 냉혹한 서점 간 생존경쟁이 깔려 있어 강한 리얼리티를 품고 있다. 도서관은 영화에서 인류 정신의 고향으로 상징화되곤 한다. 영화 《투모로우》 《쇼생크 탈출》 《시티 오브 엔젤》이 대표적이다. 《러브 레터》 《내셔널 트레저》 《세븐》도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다. 《필로우 북》은 책 자체가 주인공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이 영화는 책 또는 글쓰기를 매개로 가부장제사회의 억압과 여성해방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책 향기와 커피 향기는 늘 잘 어울린다. 200여 년 전 프랑스대혁명기 계몽사상가들인 볼테르, 루소, 디드로가 단골이었던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는 이들의 몇몇 저작의 탄생지였다. 위고, 발자크, 디킨스, 카프카, 피카소, 브레히트, 프로이트 같은 작가와 예술가가 모두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파리와 빈에서는 ‘커피숍 작가’까지 생겨났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알텐벨크는 수십 년간 하루같이 단골 카페에서 생활했으며 심지어 임종도 그 카페에서 맞았다. 최근의 유명 커피숍 작가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이 있다. 그녀는 늘 유모차를 밀고 단골 커피숍을 찾아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그곳 컴퓨터로 소설을 썼고, 훗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판타지소설을 완성해냈다.
책속으로 추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책도 점차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인류는 책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책의 문화적?심미적 의미도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종이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에는 장정, 인쇄, 종이, 서체, 삽화 등이 모두 책 제작의 중요한 고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책이 비로소 다방면으로 더욱 다채롭고 풍부한 의미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인피서(人皮書, 사람 가죽으로 만든 책)는 서적 발달사에서 가장 이단적인 책의 한 종류다. 인피서가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중세시대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최소한 100권 정도의 인피서가 남아 있으며 주로 구미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기억을 강화하는 특수한 수단으로서 인피서는 일반적으로 경계警戒와 기념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_93쪽
나도 모변본을 좋아한다. 독서 과정에서 잠깐 대기하는 듯한 특별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변본은 반드시 한 쪽 한 쪽가장자리를 직접 잘라야 독서를 이어갈 수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독서 속도가 다소 느려진다. 독서 속도가 느려지면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얻어, 문자의 깊은 뜻을 하나하나 음미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과 책은 서서히, 물과 젖이 잘 섞이듯水乳交融 일체를 이룬다._111쪽
고금古今의 독서인들은 왜 두어를 묘사하는 데 열중했는가? 이작은 생물과 장서 사이에 갖가지 애증이 얽혀 있는 점 이외에도 아마 시인 류사허가 말한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한 듯하다.
“책 사이에서 부침하고, 문자 사이에서 태어나 죽는 책벌레의 삶이 바로 우리 독서인의 모습의 투영이 아닌가?”_130쪽
2부 책의 거처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의 ‘서가’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깊이 있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서가와 책은 독서인과 어우러져 완전하고 사적인 독서 공간을 구성하기에 한 사람의 내면생활을 남김없이 드러내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 격언에도 “서가는 그 주인을 비춰주는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정신생활의 상징으로서 서가에는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다._134쪽
‘낭환’이란 신화에서 천제天帝가 책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 이야기는 신선이 사는 몽환적인 장소를 빌려 오래도록 꿈꿔온 독서인의 바람을 표현했다. 그것은 바로 이상적인 서재書齋를 갖고 싶은 마음이다._145쪽
상업화 물결의 충격과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각지의 서점은 끊임없이 숫자가 감소하는 추세이며, 서점을 찾는 사람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책을 전파하는 중개자로서 서점은 이미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점차 문화적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근래 중국과 외국의 영향력 있는 서점 다수가 줄줄이 도산하거나 인터넷 서점으로 전환했다. 이런 현상도 그러한 변화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상황은 이와 같지만 세계에는 아직도 꽤 많은 서점이 있다. 이들 서점은 시대의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꼿꼿이 쓰러지지 않고 남아 심오한 문화적 의미를 축적하며 애서가의 마음속 지표가 되어 여전히 현란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_162쪽
모든 독서인의 뇌리에는 도서관의 모습이 저장되어 있다. 그 모습은 기억 속에서 왕왕 현실인 양 환상인 양 신비한 형상을 드러내곤 한다. 도서관에는 한 줄 또 한 줄 서가가 밀집되어 있어서 끝도 없는 삼림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가에 빽빽하게 진열된 책은 하늘의 태양을 가리는 나뭇잎처럼 보인다. 도서관보다 더 고요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햇살의 발자국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어쩌다 한 열람객이 걸어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가 옆을 스쳐 가면 희미한 먼지 냄새가 일곤 한다. 그러나 자세히 귀 기울여보면 거대한 소리가 서가 사이를 맴도는 듯하다. 이 하모니는 낮게 신음하는 듯, 혼자 중얼거리는 듯, 서로 싸우는 듯, 격렬하게 웅변하는 듯하며, 또 어떤 때는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듯하다._180쪽
3부 책과의 인연
책벌레라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서치書癡’다. 이 중 ‘치癡’라는 글자에는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총명하지 못하고 우둔하다.’ 둘째, ‘미치광이, 광인.’ 셋째, ‘어떤 일을 오래 계속하며 멈추지 않는다.’ 넷째, ‘천진하다.’ ‘서치’라는 말을 사용하여 병적으로 책을 좋아하며 책에 빠진 사람을 지칭한 것은 실로 옛사람들의 창조적인 지혜라 할 만하다. 책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치’라는 글자가 가리키는 몇 가지 특징에 딱 부합한다. 이런 사람은 책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책 이외의 사물에 대해서는 매우 굼뜬 반응을 보이다가 흔히 사람들에게 총명하지 못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또 책을 너무 좋아하여 책에 너무 깊은 정을 쏟아 붓느라 늘 보통 사람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왕왕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뇌에 문제가 있다”느니 “완전히 미쳤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책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흔히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가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그 열정을 오래 간직한다. 게다가 마음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단순하여 때때로 진실한 마음을 있는 대로 드러내므로 말이나 행동에 천진함이 그대로 묻어난다._196쪽
멘델은 사실 지자 智者였고 고서는 바로 그의 우주였다. 그는 인간 세상의 각종 소란은 보지 않고 오로지 정신을 집중하여 자기가 속한 세계를 건설했고 아울러 그 속에 침잠하여 즐거움을 얻었다. 츠바이크는 소설 속 화자 ‘나’를 통해 이 고서 상인에 대한 찬미의 정을 표현한다. 그는 이렇게 묘사했다.
“당시에 나는 한 젊은이로서 그를 통해 온 신명을 쏟아 붓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바로 예술가, 학자, 진정한 철인 그리고 순수한 광인을 창조하는 힘이었다. 그것은 완벽한 침잠에 의해 조성된 비극적인 행복과 액운이었다.”
이윤 추구를 유일한 목표로 삼는 오늘날 같은 시대에 이처럼 책에 심취한 서적상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그런 우주를 창조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_222~223쪽
정말이지 책이 있어도 읽을 사람이 없는 것이 오늘날 찬란한 문명 세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적막이다. 독서에 바쁜 사람도 일부 있지만 그들 또한 조급한 성공과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더러는 진학을 위해 또 더러는 고증을 위해서만 책을 읽는 것이다. 이들은 밤낮없이 책을 읽느라 말할 수 없이 심한 고통을 겪는다. 지금 독서는 점점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독서는 본래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_224쪽
책 빌리기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남에게 책 빌려주기를 싫어하는 것은 독서인의 보편적인 심리인 듯하다. 청나라 말의 장서가 예더후이(葉德輝, 1864~1927)는 일찍이 자신의 서재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 붙였다. “책과 마누라는 빌려주지 않는다書與老婆不借.” 이 말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전해져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책과 운명을 함께하려는” 이런 마음은 많은 독서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_241쪽
진전과 교분이 두텁던 오건(吳騫, 1733~1813)은 자신의 장서명藏書銘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추워도 옷이 없을 수 있고, 배고파도 음식이 없을 수 있지만, 책은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된다寒可無衣, 饑可無食, 至於書, 不可一日失.” 책벌레의 생활에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는 또 자신의 장서루에 ‘배경루拜經樓’란 이름을 붙였다. ‘경서를 경배한다’는 의미다. 청나라 장서가 구중용(瞿中溶, 1769~1842)은 동지였던 고포충 顧抱?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에서 “황금을 다 뿌려 책을 모았다黃金散盡爲收書”라고 읊었다. 여기서 ‘산진(散盡, 다 뿌리다)’이란 표현은 과장이겠지만 장서가의 ‘광기’를 정확하게 묘사한 말이다._261쪽
4부 책을 둘러싼 풍경
아름다운 책으로 가득한 서가와 형형색색의 책 광고 포스터, 그리고 안경을 낀 채 책 더미 뒤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서점 주인은 언제나 편안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때문에 서점은 늘 영화의 독특한 소재로 간주된다. 아마 그 짙은 책 향기가 쉽게 사람들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덕분에 서점은 낭만적인 장소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되었다. 늘 열려 있을 것만 같은 문 한 짝을 밀고 들어서면, 그 뒤편엔 언제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다._289쪽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 1922~2010)도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O Ano da Morte de Ricardo Reis》(1984)라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내 목숨이 한 시간 남았다면, 난 아마 뜨거운 커피 한 잔과 당장 맞바꿀 것이다.” 이들은 왜 이처럼 커피에 열광하는 걸까? 커피 자체의 특별한 맛과 기능을 제외하고도 커피라는 글자에 농축된 풍부한 문화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서구인에게 커피는 기호 식품일 뿐 아니라 일종의 이상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 향기와 커피 향기는 몸과 그림자처럼 늘 서로를 보완하며 한데 어우러져 정신생활의 상징이 된다._315쪽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한국어판에 부쳐
글을 시작하며: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1부 책의 향기
책의 아름다움: 책도 예술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책의 냄새: 한 줄기 책 향기가 온갖 향기를 압도한다
띠지: 가느다란 띠지에 마법의 힘이 담겨 있다
책갈피: 직접 만든 책갈피로 애틋한 마음 전하고
장서인: 붉은 인장 한 점 한 점에 마음을 찍는다
장서표: 종이 위의 보석, 책 위의 나비
책의 형태: 책을 빚는 손길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고
모변본: 타고난 모습 그대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책벌레: 평생 한 마리 책벌레로 살고 싶다
2부 책의 거처
서가: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의 서가를 봐야 한다
서재: 책 향기 짙은 정신의 영토
서점: 현자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한다
도서관: 천국은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
3부 책과의 인연
서치: 책에 우아하게 미치다
서적상: 책과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다
독서: 지극하도다, 천하의 즐거움이여!
책 빌리기: 책을 빌려주는 것도 바보, 돌려주는 것도 바보
장서: 황금을 뿌려 책을 모으다
책도둑: 책도둑은 고상한 도둑이 아니다
금서: 눈 오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다
4부 책을 둘러싼 풍경
책과 영화: 풍랑을 피해 정박한 백일몽 속 항구
책과 여인: 책 속에 옥 같은 여인이 있다
책과 커피: 사색과 관조의 동반자
책과 치료: 이 글이 내 병을 치료했다
책과 광고: 가장 방탕하고 요염하고 비밀스러운 꿈을 만나본 적이 없나요
옮긴이의 글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