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행복한 농사꾼 홍쌍리의 진한 삶의 이야기!
홍쌍리의 삶과 농사꾼의 일상을 구성진 가락에 담아낸 청매실농원 이야기 『인생은 파도가 쳐야 제밌제이』. 홍쌍리의 삶을 다룬 책이다. 그동안 다뤄온 매실의 효능이나 친환경 먹거리에 관한 내용이 아닌 그의 삶을 조명한다. 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놓았던 편지와 일기 그리고 시와 함께 삶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직도 몸서리쳐질 만큼 고생스럽던 나날의 이야기, 자신에게 힘이 돼주었던 꽃들을 보고 흘렸던 눈물들을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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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홍쌍리의 삶과 농사꾼의 일상을 구성진 가락에 담아낸 청매실농원 이야기
“어둡고 괴로운 맘 섬진강에 다 띄워 보내고, 매화 향기 가득 담아 가이소.”
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의 추천사
… 찬바람이라도 쏘이려 방문을 나선 나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천국을 보았습니다. 매화는 흐드러지게 피었지요, 달은 밝지요, 사방은 고요하지요.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 그 이후, 나 혼자 몰래 다녀온 천국이 못내 아쉬워 그 밤을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합니다. 청매실농원에 꼭 한번 가보라고. 반가운 목소리의 예의 그 밀짚모자를 쓴 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 여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 나올 거라고._연극인 박정자
홍쌍리는 나에게 때론 엄마 같은, 때론 친구 같은, 때론 인생의 스승 같은 소중한 존재다. 그와 알고 지낸 20여 년 동안 언제나 그에게서 힘과 쉼을 얻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거북이 등 같은 갈퀴손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홍쌍리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매화꽃 같은 그의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 담긴 이 책을 보면서 잠시나마 힘과 쉼을 얻기 바란다._배우 고두심
방송국 작가실에서 집필을 하다 보면 수많은 시청자들의 전화가 걸려온다. 너무도 기구한 자신의 인생을 말해줄 테니 드라마로 만들어달라는 요청들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면 실제로 드라마가 될 인생은 그리 흔하지가 않다. 을 집필하면서 맺은 인연을 오늘까지 이어오면서 늘 홍 여사님의 인생을 드라마로 집필해보고 싶었다. 이번 출간은 언젠가 내가 집필하게 될 드라마를 미리 볼 기회다. 모든 드라마 작가들의 꿈인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는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이다._작가 최완규
기획의도
매화 천국을 꿈꾸던 홍쌍리, 그 인생의 파도를 말하다
홍쌍리 하면, 흐드러지게 핀 매화로 온 산이 백설에 덮인 듯한 청매실농원이 떠오른다. 섬진강가의 매화마을 이름으로 알고 있거나, 매실 제품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매실 명인 홍쌍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실액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 위장에 탈이 났을 때 사람들은 매실액을 찾기 시작했다. 매실 반찬과 매실 가공식품들도 속속 등장했다. 된장, 고추장, 김치처럼 매실은 어느덧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음식이 되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매실이 어떻게 지금처럼 대표 먹거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해마다 열리는 매화축제에 100만여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걸까?
그것은 “사람들 오면 어둡고 괴로운 맘 섬진강에 다 띄워 보내고, 온 산천 가득 핀 매화꽃들을 보며 활짝 웃게 하고 싶다”던 홍쌍리의 소박한 꿈에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잘나가던 부산 가시네’ 홍쌍리는 50여 년 전 밤나무 가득한 촌으로 시집와 온갖 고생을 한다. 그런 그를 위로했던 것이 시아버지 김오천이 일본에서 들여와 드문드문 심어놓았던 매화나무였다. 매화꽃을 딸, 매실을 아들이라 칭하며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던 홍쌍리는 시댁 식구들의 꾸지람을 각오하고 밤나무를 조금씩 베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매화나무를 하나둘 심었다. 오늘의 청매실농원이 만들어진 계기다.
“항아리를 바윗돌 위에 올려놓는데, 돌 사이 양지바른 데 매화 한 송이가 나풀나풀하고 있어. 근데 꽃이 나를 보고 엄마, 울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 하는 것 같은 거야. 그 꽃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더라고. 울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섬진강 위에 새벽안개가 솜이불 덮어놓은 것 같고 그 뒤에 지리산이 감싸고 있네. 내가 여기서 오늘 살다가 내일 도망을 가더라도, 이 아름다운 곳에 꽃 천국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불러들이자, 그럼 안 외로울 것 아닌가, 이런 맘이 들더라고.”
홍쌍리는 50여 년간 겪은 삶의 질곡을 “재미있는 파도”였다고 표현한다. 물론 그것이 쉬운 파도가 아니었기에 “나처럼 너무 센 파도는 넘지 마이소”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손댔던 광산사업이 망하면서 빚더미에 앉기도 했고, 부인과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며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또 고된 노동으로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아 몇 년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고, 해마다 봄만 되면 매실과 씨름했다. 그 노력에 보상이라도 하듯 1997년 홍쌍리는 ‘국가 지정 명인 제14호(식품 1호)’로 지정되었다. 사람들이 그를 ‘불도저’라 부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금의 매화마을과 청매실농원이 있기까지 홍쌍리는 그 센 파도를 어떤 마음으로 넘었을까?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소박한 꿈을 어떻게 현실로 이뤄냈을까?
영화 만들던 인터뷰어 김도혜는 칠순의 홍쌍리를 만나 사계절을 보내면서 그에게 받았던 깊은 인상들을 통해 속내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홍쌍리의 그 거대한 성공이 아니었다. 흙과 꽃을 사랑한 그가 매실 연구에 매진해 선구적 농민 기업가로 인생 제2막을 시작한 것은 나이 쉰이 훌쩍 넘어서다. 정작 나를 뒤흔들어놓은 것은 그가 무학의 시골 아낙네로 그 세월을 사는 동안 형언할 수 없는 고생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쌍리는 자연과 삶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우고 뜻을 세워 그것을 이뤄냈고, 늘 이웃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이 책은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삶의 기록이다
“나같이 힘든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고 힘을 냈으면…”
이 책은 홍쌍리의 삶을 다룬 책이다. 물론 이전에도 그가 쓴 책이 여럿 나왔지만 대부분 매실의 효능이나 친환경 먹거리에 관한 내용이었지 그의 삶을 조명하지는 않았다. 이 책에는 그의 삶의 이야기는 물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놓았던 편지와 일기 그리고 시詩가 담겨 있다. 홍쌍리는 이 책을 발간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힘든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농원에 시집와서 고생한 이야기, 행복한 농사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안이 여러 번 있었는데, 어쩐지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랑할 것도 창피할 것도 없는 삶이지만, 무엇보다 아직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때인데 인생을 정리하는 듯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 적당하지 않게 여겨졌다. 나를 만나면 다들 매실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데 인터뷰어 김도혜는 어떤 마음이 들 때 시를 쓰냐고 물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까만 눈동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반짝거렸다. 여든쯤 되면 내 인생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겼다. 나같이 힘든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고 힘을 냈으면 해서다.”
홍쌍리는 아직도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리고 아직도 몸서리쳐질 만큼 고생스럽던 나날의 이야기, 자신에게 힘이 돼주었던 꽃들을 보고 흘렸던 눈물들을 밤마다 글로 써내려간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행복한 농사꾼’이라 일컫는다. 청매실농원에서 홍쌍리를 만났던 사람들이 그랬듯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큰 힘과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3장 장사를 잘하는 여자
도혜 닭백숙 장사와 김치 장사는 어떻게 해서 시작하셨어요? 부산 시절엔 도매상에서 판매를 맡아 하셨지만, 음식을 직접 만들고 파는 것은 더 큰 일이었을 텐데요.
쌍리 시장에 가서 장사하는 것은 해봤으니 겁이 안 났지. 내가 우리 친정 엄마를 닮았는지 손맛이 꽤 있었거든.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 김치 장사는 1986년인가, 광양시에 나가서 했었고, 백숙은 그 담에 우리 집에서 했지. 한창 광양이 개발되면서 제철소 생기고 그럴 때, 시장에 가서 장사하는 자리를 뽑았는데 내가 제일 좋은 자리를 뽑았어. 비싼 이자를 계속 갚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돈을 좀 벌어보려고 시작을 했지. 거기서 오랫동안 장사한 상인들이 많고 단골손님들도 다 있는데, 새로 나타난 내 물건을 누가 사겠노. 우리 밤이랑 감이랑, 여수에서 떼어온 건어물 이런 거 놓고 파는데 잘 안 되더라고. 다들 전라도 말 쓰는데 나만 경상도 말을 쓰잖아. 근데 광양제철엔 포항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 꽤 있었어.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듣더니 반가워하면서, 경상도 아지매니까 경상도 사람들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가서 팔면 좋지 않겠냐고 해. 자기들이 와서 사먹을 테니까 해보라고. 내가 김치 양념을 어떻게 했냐면, 맛있는 걸 열 가지쯤 넣었지. 펄떡펄떡 뛰는 생새우는 제일 작은 것을 김치 담기 일주일 전에 사서 소금 간을 약하게 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써. 소금은 5년 묵혀 간수 뺀 것으로 하고. 참조기는 여수에서 나는 샛노랗고 작은 것을 머리만 떼고 통째로 갈아서 썼어. 육수는 멸치, 디포리, 무 넣고 푹 끓여서 만들고. 그리고 찹쌀 풀, 매실, 청각, 갈치속젓, 멸치액젓도 들어가제._98~99쪽
4장 꽃의 노래, 나의 노래
홍쌍리는 시집와서 맨 처음 산에 가 땅을 파보고 깜짝 놀랐다. 땅속에 들어앉아 있는 돌이 전부 모나고 거칠었던 것이다. 어릴 때 밀양에서 본 돌과 영 달랐다. 언니, 오빠와 배 타고 강에서 놀 때 주워서 만지작거렸던 돌은 동그랗고 매끄러웠다. 그때는 모난 돌들이 보드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어야 했는지 잘 몰랐다.
말이 달라서 더 그랬을까, 깊은 산골마을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는데, 부산 아가씨 눈에 들어온 잘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꽃이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마당 한가득 심어놓고 가꾸시던 꽃. 벚꽃 가지 꺾어다 방에 꽂아두고 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처음 보는 야생화들도 하나둘 이름을 알게 됐다. 힘들고 눈물이 날 때마다 산에 올라가서 혼자 서러움을 달래다 보니, 어느 날 꽃, 나무, 새, 강물 이런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홍쌍리는 밤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잘하긴 했지만, 부산에서 살 땐 이토록 절박하게 글쓰기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재미삼아 친구들 연애편지나 대필해주는 정도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잠 잘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그냥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마음을 어딘가에는 담아두고 싶었다. 그날 겪은 힘든 일, 하고팠지만 못 한 말을 쓰면서 울었고, 써놓고 읽어보면서 또 울었다. 그
렇게 자신의 속내를 풀어쓰기도 했지만, 새로 눈 뜬 사람처럼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교감도 노래했다._117~118쪽
5장 인간 불도저
도혜 시아버지께는 매실을 약으로 쓰는 것을 배우셨는데, 매실로 반찬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쌍리 어느 날, 밭 매다 흙범벅된 손으로 나무에서 잘 익은 매실을 만지다 으깨졌는데, 때가 말끔히 없어지는 거야.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삼발이에 올려놓고 불 피고 쓰느라 까매진 냄비 궁뎅이에 매실을 묻혀서 비닐봉지에 담아 햇볕에 엎어 놔둬 봤어. 며칠 지나니 깨끗해져 있더라고. 이 매실이 자꾸 나를 미치게 하는 거야. 또 기름기 많은 거 있잖아. 참기름이나 들기름 발라서 부침 해먹은 솥은 짚이랑 재를 가지고 씻는데, 매실을 절구에 빻아서 천에 묻혀 가지고 닦아보니 깨끗이 지더라고. 가만 보니까 정말로 이게 배 속 청소부가 되겠네 싶더라고. 그럼 아플 때 약으로만 먹을 게 아니라 어떻게든 밥상에 올려야 매일매일 먹을 게 아이가. 그래서 궁리해낸 게 장아찌야. 장아찌를 만들어보려는데 어찌해도 잘 안됐어. 시어매는 그걸 누가 먹는다고 자꾸 헛짓을 하냐고 안 좋은 소리 하시는데 나는 몰래몰래 계속 했지. 어떻게든 매실을 밥상에 올리는 게 내 1차 목표였어.
…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에, 김치가 정말 짰어. 짠 게 그리 몸에 나쁘다면 울 동네 사람들이 왜 전부 여든, 아흔 살까지 살겠노 싶더라고. 나는 소금에 대해서 궁리를 했제. 1년짜리부터 7년짜리까지 다 실험을 해보니 매실 장아찌에는 5년짜리가 딱 알맞은 것 같았어. 소금에서 간수를 5년 빼면 손에 쥐어도 소금이 안 붙고, 짜면서도 단맛이 같이 나. 비닐 장판 말고 뻘 밭에서 만든 소금이 제일 좋은 거고. 소금을 많이 넣으니 장아찌가 꼬들꼬들하니 좋기는 좋은데 뭔가 아쉬운 기라. 설탕을 함께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설탕이 귀했지. 나는 부산에서 설탕을 먹다가 왔지만 산골에는 설탕이 거의 없었어. 근데 아부지가 누룽지 드실 때 설탕을 넣어 드시거든. 아부지 방에 두고 아무도 손 못 대는 그 설탕을 쪼깨 훔쳐나와가꼬 장아찌에 넣어보니 쪼글쪼글하니 장아찌가 잘 되는 거야. 오, 잘 되네, 나는 속으로 소리쳤지._170~172쪽
6장 일하는 여왕벌
홍쌍리는 남들의 걱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연구개발비를 포함한 고정비용에 대해서는 직원들과 늘 협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빠르고 쉬운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관광농원으로 지정받으면 지원금도 받을 수 있고 시설물을 짓거나 개발할 때 허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 청매실농원 정도면 자격이 충분하다고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지원금도 투자금도 원하지 않았다. “내게 돈을 줄 때는 뭔가 얻어가려고 하는 것이 있을 텐데, 내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내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 돈을 받을 수가 없다 아이가. 예를 들면 나는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입장료 받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느리게 가더라도 내 생각대로 가고 싶어.” 농원을 취재하러 온 영국과 프랑스 언론인들이 “이곳은 농원이 아니라 아름다운 공원”이라며 감탄했지만, 그의 포부는 더 크다. 단지 겉모습만 예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와서 가슴의 찌꺼기를 버리고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도록 인간이 만든 것을 더하고, 따뜻한 인심으로 오래오래 감동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가꿔놓으니, 영화나 드라마를 찍게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그는 언제나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같은 많은 작품이 농원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농원 한쪽에 자리한 초가집은 을 찍을 때 지은 오픈세트였다. 촬영 뒤 철거하지 않고, 꽤 큰돈을 들여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완성한 것이다._220~221쪽
7장 사람아, 사람아
도혜 조용한 산속에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지내던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건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쌍리 농원을 비우고 서울에 가는 일이 많아졌는데, 나는 흙을 만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의 안정이 깨지는 사람이더라고. 여기 시집와 30년을 살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된 거야. 떠나본 적이 없으니 그런 줄도 몰랐었지. 텔레비전과 라디오방송에 출연하고 신문, 잡지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됐는데, 너무 알려지니 안 좋은 거 같아. 같이 사진 찍어달라면 찍어주고, 그런 거는 할 수 있는 거고 고마운 마음으로 다 해드렸지만, 너무나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오니까 일이 복잡해지더라고. 몇십 억을 투자하겠다는 사람, 나보고 이렇게 하면 더 잘될 거라는 사람, 하도 많으니까.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청매실농원이 뒤흔들려 없어져버릴 것 같았어. ‘나를 그냥 농민으로 살게 내버려둬라. 나는 농민으로 살겠다.’ 어느 날 내가 마음속에서부터 이렇게 외치고 있더라고._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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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홍쌍리의 들어가는 말
김도혜의 들어가는 말
1장 두 아버지
미운 놈 떡도 안 준 아버지/지독한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어머니의 죽음, 또다른 삶이 시작되다
2장 눈물과 매화
시집살이, 고난이 시작되다/매화꽃이 말을 걸다/뜻하지 않은 시련, 빚더미에 앉다
3장 장사를 잘하는 여자
광복동의 패셔니스타, 홍쌍리/“장사하는 게 재미있더라고”/‘괴기 보태기’ 홍쌍리를 며느리 삼다/못사는 다압면이 먹고살게 되다/고객감동 마케팅의 귀재, 홍쌍리
4장 꽃의 노래, 나의 노래
자연에 말을 걸다/“젊은이들 마음에 남는 글을 쓰고 싶데이”
5장 인간 불도저
매화는 내 딸, 매실은 내 아들/“너무 재밌어서 잠이 안 와. 매실 만지고 싶어서”/매실의 효능을 알고, 매실에 미치다/기적처럼 찾아와준 첫 고객/“매실은 항아리에 담는 게 최고야”/최초로 전통식품 명인이 되다/“개성 없는 농업은 2등이 될 수밖에 없제”/경영자가 아닌 농사꾼의 마음으
6장 일하는 여왕벌
최고의 스승 시아버지의 우등생 며느리/매화나무만이 희망이다/감동을 선사하는 청매실농원으로/“느리게 가더라도 내 생각대로 가고 싶어”
7장 사람아, 사람아
사람에게는 높고 낮음이 없다/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줘야 한다/표정이 밝고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을 뽑는다/나를 힘들게 한 인연도 다 좋은 열매를 맺었다/법정스님은 또 한 분의 아버지셨다
김도혜의 나가는 말/편지/홍쌍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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