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전히 진행 중인 하나의 작품, 로마의 역사!
로마사 최고의 권위자 메리 비어드가 로마와 로마의 시대에 바치는 압도적, 매혹적, 기념비적인 걸작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이 책의 원제인 《SPQR》은 로마의 또 다른 유명한 표현인 세나투스 포풀루스케 로마누스Senatus PopulusQue Romanus, 곧 ‘원로원과 로마 인민’을 뜻한다. 저자는 로마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떻게 오랫동안 그 지위를 유지했는지에 방점을 두고 로마의 건국에서 시민권이 부여된 212년까지 거의 1천 년에 달하는 로마의 역사를 엄정하고도 세심하게 그려낸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 로마식 다문화주의, ‘라틴어’를 둘러싼 문화사, 로마사를 장식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네로와 여러 황제의 이야기, 그리고 원로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정치 논쟁 등 로마가 탄생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고도 대담한 필치로 완벽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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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로마 역사의 가장 완벽한 연구가 메리 비어드가
마침내 완성한 ‘로마’의 모든 것!
현역 고전학자로, 그리스 로마 연구자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독창적인 인물로 꼽히는 메리 비어드의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가 출간되었다. 이 책의 원제인 《SPQR》은 로마의 또 다른 유명한 표현인 세나투스 포풀루스케 로마누스Senatus PopulusQue Romanus, 곧 ‘원로원과 로마 인민’을 뜻한다. 에드워드 기번과 같은 로마사 연구자들이 로마의 쇠퇴와 붕괴에 주목했다면, 비어드는 로마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떻게 오랫동안 그 지위를 유지했는지에 방점을 두고 로마의 건국에서 시민권이 부여된 212년까지 거의 1천 년에 달하는 로마의 역사를 엄정하고도 세심하게 그려낸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 로마식 다문화주의, ‘라틴어’를 둘러싼 문화사, 로마사를 장식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네로와 여러 황제의 이야기, 그리고 원로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정치 논쟁 등 로마가 탄생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고도 대담한 필치로 완벽하게 담아냈다. 로마사 최고의 권위자 메리 비어드가 로마와 로마의 시대에 바치는 압도적, 매혹적,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비어드의 로마사는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역사가들이나 역사 소설 작가들이 자신의 거창한 관점이나 해석을 객관화된 설명인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리 비어드는 그들과 다르다. 비어드에게 하나의 거대한 ‘로마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의 세계가 이탈리아 밖으로 멀리 뻗어나갔을 때 “로마의 역사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브리튼의 역사나 아프리카의 역사와 다르다.” 따라서 각기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물론 “서로 다른 시기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종류의 역사가 쓰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항아리 조각이나 돌에 새겨진 몇 개의 글자 같은 증거 하나하나를 쥐어짜 이야기를 대담하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비어드의 지론이다.
이처럼 비어드는 고대의 옛 문헌 자료뿐만 아니라 새로 발견된 자료들에도 하나하나 주목하여 새롭게 해석해 낸다. 여기서 언어를 연구하는 고전학자인 메리 비어드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비어드는 기존의 역사가들이 행한 언어의 잘못된 해석에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제대로 된 해석을 해낸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해석이나 사료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독자에게 절대로 강요하듯 지시하지 않는다. 독자 나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문제를 던져주며, 그런 과정에서 독자는 저자와 동류가 된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또한 비어드 특유의 풍자와 비유, 적절하게 제시되는 흥미로운 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책을 더욱 다채롭게 해준다. 과거와 현대를 뛰어넘는 통찰과 비어드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한 필치가 단연 돋보이는 로마사 최고의 역작이다.
로마 역사를 읽는 것은 왜 중요한가
“로마의 역사는 언제나 다시 쓰이고 있다. 로마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하나의 작품이다. 따라서 이 책은 로마가 왜 중요한지에 관한 나의 해석이다.”
비어드는 고대 로마에 관하여 로마인들 자신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만큼 로마의 역사는 계속하여 다시 쓰이며 새롭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로마가 왜 중요한지에 관한 비어드의 해석이다. 비어드는 “이 책의 추진력이 된 것은 로마의 역사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이었고, 고대 로마와 대화하는 일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확신이었으며, 이탈리아 중부의 작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촌락이 어떻게 세 대륙에서 그 많은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 비어드는 우리 스스로 로마와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다양한 제도와 원칙들이 사실은 얼마나 다른 전제와 맥락 속에서 시작되고 변화된 것인지를 추적한다. 심지어 로마 역사 안에서도 동일한 이름으로 불린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것들에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로마 역사의 변화와 연속성, 그리고 우리 세계와 고대 로마의 연속성과 차이를 보여준다. 덕분에 그녀가 그려내는 새로운 로마를 따라 우리 자신의 세계 역시 새롭게 그려지고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사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좌표를 가늠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역사는 한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새롭게 해석되며, 그 시대에 맞게 변형이 되기도 한다. 키케로의 연설 “카틸리나여, 그대는 얼마나 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 텐가”는 21세기의 정치적 수사에도 여전히 잠복해 있다. 카틸리나의 이름을 미국, 프랑스, 시리아 대통령의 이름으로 밀라노 시장과 이스라엘 국가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여, 당신은 얼마나 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 텐가?” 이 문구를 바꾸어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이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또는 키케로와 카틸리나가 정확히 무엇을 두고 충돌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로마의 공화정과 원로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여러 정치적 논쟁과 키케로의 면면들은 로마가 여전히 진행형인 역사이며, 현대 정치, 사회,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많음을 역설하고 있다. 로마는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이다.
키케로로 흘러들어 키케로로 흘러나오는 로마의 역사
이 책의 출발점은 ‘카틸리나의 음모’ 사건이다. 지방 도시 출신의 ‘신인’이었던 키케로는 뛰어난 언변으로 법조계에서 거둔 성공과 탁월한 정치력으로 구축한 화려한 인맥을 밑거름 삼아 집정관 자리에 오르는 등 로마 정계의 거물로 성장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시 로마의 정치인들에게 필수적 요소로 꼽히는 군사적 성공이 절실했다. 그런 키케로에게 카틸리나의 음모를 분쇄하고 그 일당을 제압하는 일은 바로 군사적 성공을 대신할 절호의 기회였고 그는 이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성공하는가 싶었던 키케로의 기회는 결국 로마 정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거스른 사실로 인해 실패하고 만다. 카틸리나 일당이 설사 국가 전복을 모의한 세력이라 할지라도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그들을 처형한 것은 로마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 곧 로마의 모든 인민은 누구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원리를 위배하는 일이었고, 이는 로마 왕정의 몰락 이후 로마 정치의 가장 중요한 금기사항이었던 절대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간주되었다.
키케로는 결국 추방당했고 1년 만에 다시 로마로 복귀했지만, 다양한 모색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전의 정치적 지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흔한 정치음모에 불과할 수 있는 이 사건은 로마 공화정이 결국 파국에 이르고 로마 제국이 시작되는 변곡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비어드는 사건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과 이 사건에 작용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하나하나 복원하고 그 기원과 이후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 사건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로마 공화정과 운명을 같이한 키케로를 그 가정사부터 정치적 이력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으로 추적하고 그 면면들을 로마 사회와 그 역사에 연결 짓는 방식으로 왕정부터 공화정을 거쳐 제국의 절정기에 이르는 로마 1,000년의 역사를 서술한다. 그렇게 키케로를 하나의 구심점으로 그에게로 흘러들고 다시 그로부터 흘러나오며 연대기와 박물지를 절묘하게 혼합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대서사와 미시사가 한데 어우러지며 한 편의 흥미로운 로마사가 완성된다.
로마의 성장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중부의 작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촌락이 어떻게 그 많은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어떤 역사학자는 이민족에 대한 로마인들의 포용성과 관용성을 언급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로마의 잔혹한 정복전쟁에서의 승리를 언급하기도 한다. 로마가 처음부터 세계 정복의 원대한 계획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어떤 명백한 사명의 차원에서 제국을 누비고 다니기는 했지만, 지중해 세계로 뻗어나간 그들의 군사적 팽창 이면의 근원적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의문에 로마의 성장 원동력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다. 제국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로마인들이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이 때때로 잔혹한 학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상대 또한 폭력이 난무하고 군사력으로 지탱되는 경쟁 세력들이었다. 로마의 적들은 대부분 로마인만큼이나 군사주의의 성향을 지녔다. 그러나 로마의 적들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의 원제인 《SPQR》에서 대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로마 황제도 SPQR(원로원과 로마 인민)이 있는 한 절대 권력자가 될 수 없다. 원로원과 시민의 승인으로 통치권을 위임받는 존재일 뿐이다. 집정관, 원로원, 민회라는 로마의 공화정은 황제의 정치가?‘독재’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을 갖춘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던 것이다.?여기에 로마는 점령한 이민족과 이해로 얽힌 정치세력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유연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로마군과 싸우던 갈리아인의 후손이 로마 장군이 되었으며,?북아프리가 유목인의 후손이 로마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기원 후?212년 카라칼라 황제가 로마 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며,?로마는 단순히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닌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의 이름이 되었다. SPQR이라는 제도와 확장된 시민권이 로마가 위대한 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 분명하다.
이 책은 비어드 스스로도 50년 가까운 작업의 결실이라고 말할 만큼 누가 뭐래도 그녀의 오랜 학문적 노력의 결정체이다. 우리는 이 책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를 읽으며 로마의 역사에 대한 상상적인 이해를 발동시켜 로마사에 대해 지식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은 물론 보편적인 인간의 이해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어드의 마지막 말처럼 이 책은 그저 한 편의 고대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로마 원로원과 인민, 곧 SPQR과 나누는 그런 대화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책속으로 추가]
사제들은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로 긴 머리칼에 탬버린을 들고 열정적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대로 전혀 로마답지 않았다. 그 후로 영원히 그것은 ‘로마인’과 ‘외국인’에 관한 불편한 질문, 그리고 둘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했다. 만약 이런 종류의 것이 조상의 고향에서 온 것이라면, 로마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p.256
기원전 2세기 말 북아프리카의 왕 유구르타에 맞선 전쟁을 다룬 그의 다른 글에서 살루스티우스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합의의 파기부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권력에 이르기까지 로마 사회 모든 부문에 나타나는 탐욕(“모두 저 자신만 생각한다”)이 카르타고의 파괴에서 비롯된 참혹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 모두가 공화정 시스템의 종말을 가리킨다. 살루스티우스는 로마의 권력을 예리하게 관찰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공화정의 붕괴는 그리 쉽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p. 264
로마 인민은 정말 해방되었을까? 앞으로 보겠지만, 그것은 아주 낯선 종류의 자유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이 폭군의 효과적인 제거를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또한 폭군의 제거가 반드시 폭정의 척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웠다. 모든 구호와 용기와 고결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암살자들이 초래한 것은, 그리고 인민이 얻은 것은 오랜 내전이었고 영구적인 1인 지배의 확립이었다. -p.364
로마 역사의 일면은 정치의 역사, 전쟁의 역사, 승리와 패배의 역사, 시민권의 역사이자 유력한 사람들 사이에서 공적으로 진행된 모든 것의 역사이다. 나는 로마가 티베르 강가의 작고 볼품없는 도시에서 처음에는 지역 권력의 기반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의 국제적 권력의 기반으로 변형되어 간 그런 극적인 형태의 역사를 개괄했다. 그런 변화의 거의 모든 측면에 도전이 있었고 때로는 말 그대로 그런 변화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졌다. -p.367
우리가 만나게 될 이후의 모든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였거나 적어도 아우구스투스를 체현했다. 그들은 황제의 명칭들 가운데에 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아우구스투스의 개인적인 인장 반지를 상속받았다. 그 반지는 한 황제에서 다음 황제로 계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략) 아우구스투스의 머리와 그의 독특한 특징들은 그의 후계자들 각각의 서명과도 같은 특징이 되었다. 그들의 독보적인 면, 미덕, 악덕 그 배경이 무엇이었든, 우리가 아는 그들의 다른 이름이 무엇이었든, 그들은 모두 더 나았거나 더 못한 아우구스투스의 환생으로서 그가 확립한 독재의 모델 안에서 활동하고 그가 미해결로 남겨둔 문제들을 처리했다. -p.473
황제와 황가의 신격화는 이보다 훨씬 더 민감한 문제였으며 살아 있는 황제의 신격화와 죽은 황제의 신격화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로마 세계 전체에서, 살아 있는 황제는 신과 아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황제는 신을 기리는 의례에 통합되었고, 신의 언어와 중첩되는 언어 로 설명되었으며 신과 유사한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어떤 종교적 기원에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p.528
로마의 노예들이 품었던 야심은 보통 노예제를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자유를 얻는 일이었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야심 역시 사회질서를 급진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부의 위계에서 정상에 더 가까운 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다음 장에서 다룰 그리스도교의 성장이 있기 전까지 로마 세계에서 철학적인 극단주의자를 제외하고 가난이 명예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은 대저택에 사는 금권정치가에게만큼이나 오스티아 술집에 단골로 드나드는 사람들에게도 터무니없어 보였을 것이다. -p.577
시민권과 함께 계약부터 처벌까지 폭넓은 주제를 포괄하며 로마법 이 보장하는 온갖 종류의 권리가 따라왔다. 60년에 성 바오로가 참수의 특권을 누린 반면 성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바오로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은 로마 중앙 정부의 지배층에 합류해 원로원과 황제의 궁정에 이르는 여정의 첫 단계였다. 에스파냐 출신의 가문에서 태어난 트라야누스 황제를 시작으로 첫 아프리카 출신의 황제로 193년부터 211년까지 통치했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까지 2세기에 제위에 오른 일부 황제들은 이탈리아 외부 출신이었다. -p.634
212년에 황제 카라칼라는 로마 제국의 자유민은 스코틀랜드부터 시리아까지 어디에 살든 모두 로마 시민이라고 선포했다.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법적 차이를 한 방에 날려버린 혁명적인 결정이었고, 거의 1,0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과정의 절정을 의미했다. 3,000만 명의 속주민들이 하룻밤 새 법적으로 로마인이 되었다. 이는 비록 세계사에서 유일한 사례는 아니더라도 단번에 시민권을 부여한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p.641
키케로의 예를 따르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이 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파산한 귀족, 민중혁명가 카틸리나와 키케로의 충돌은 여전히 시민의 권리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형성하며 여전히 정치적 저항자들을 위한 언어를 제공한다. “카틸리나여,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 텐가 Quo usque tandem abutere, Catilina, patientia nostra?” 타키투스가 로마의 적인 브리튼인들의 입에 넣어준 ‘평화’를 가장한 ‘황폐화’라는 관념은 여전히 제국주의에 대한 현대의 비판에서도 울림을 갖는다. 그리고 로마의 가장 인상적인 황제들에게 부여된 지독한 악덕은 언제나 전제정치의 무도함이 끝나고 공포정치가 시작되는 지점이 어디인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가 로마인들을 영웅화하는 것은 그들을 악마화하는 일만큼이나 몹쓸 짓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한 채, 그들과의 긴 대화를 끝낸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이 그저 한 편의 고대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로마 원로원과 인민, 곧 SPQR과 나누는 그런 대화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p.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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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추천의 말 드디어 진정한 로마사와 만나다 014
프롤로그 로마의 역사 019
1장 키케로의 전성기 029
기원전 63년, SPQR 031 | 키케로 대 카틸리나 038 | 원로원에서 042 | 승리 그리고 치욕 046 | 글을 쓰다 049 | 이야기의 다른 측면 057 | 우리의 카틸리나? 064
2장 태초 069
키케로와 로물루스 071 | 살인 075 | 강간 079 | 형제 대 형제, 외부자 대 내부자? 084 | 역사와 신화 091 | 아이네아스와 그 밖의 것들 096 | 초기 로마를 파헤치다 102 | 사라진 연결고리 110
3장 로마의 왕들 115
돌 위에 새기다 117 | 왕 또는 족장? 122 | 건국설화: 종교, 시간과 정치 127 | 에트루리아 왕들? 137 | 고고학, 폭정 그리고 강간 146 | 자유의 탄생 156
4장 로마의 위대한 도약 163
변화의 200년: 타르퀴니우스에서 긴 수염의 스키피오까지 165 | 12표법의 세계 175 | 계급 갈등 182 | 외부 세계: 베이와 로마 191 | 로마인 대 알렉산드로스 대왕 196 | 팽창, 병사, 시민 201 | 원인과 설명 206
5장 더 넓은 세계 209
바르바투스의 후손들 211 | 정복과 그 결과 216 | 칸나이와 파악하기 어려운 전투의 모습 224 | 폴리비오스, 로마의 정치를 말하다 229 | 복종의 제국 239 | 제국의 영향 245 | 로마인이 되는 법 252
6장 새로운 정치 257
파괴 259 |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유산? 265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273 | 가이우스 그라쿠스 281 | 로마 시민들, 동맹 도시들과 전쟁을 치르다 288 | 술라와 스파르타쿠스 297 | 평범한 삶 307
7장 제국에서 황제로 311
키케로 대 베레스 313 | 총독과 피지배민들 318 | 공격받는 원로원 의원들 323 | 매물이 된 로마 327 |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333 | 최초의 황제 338 | 삼인방 343 | 주사위를 던지다 352 | 3월 15일 358
8장 국내 전선 365
공과 사 367 | 내전의 다른 측면 370 | 남편과 아내 374 | 출생, 죽음, 슬픔 386 | 금전 문제 392 | 인간 자산 403 | 새로운 황제들의 역사를 향하여 409
9장 아우구스투스의 변신 415
카이사르의 후계자 417 | 내전의 면모 422 | 패자와 승자 431 | 아우구스투스의 수수께끼 436 | 아우구스투스의 행적 445 | 힘의 정치 453 | 과제와 제위계승 461 | 아우구스투스가 죽다. 아우구스투스 만세! 468
10장 14인의 황제 475
제위에 오른 사람들 477 | 가이우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480 | 선한 황제와 악한 황제? 490 | 상부의 변화 499 | 제위계승 508 | 원로원 의원들 516 | 오, 내가 신이 되고 있는 것 같아 525
11장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533
부자와 가난한 자 535 | 빈곤의 정도 543 | 일의 세계 550 | 술집 문화 557 | 참고 견디기 563 | 제비와 뱀 572
12장 로마 밖의 로마 579
플리니우스의 속주 581 | 제국의 경계 587 | 제국의 운영 594 | 로마화와 저항 603 | 자유로운 이동 612 | 그들은 폐허를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 부른다 622 | 그리스도교 문제 628 | 시민들 632 | 가이우스 율리우스 조일로스 635
에필로그 최초의 로마인 639
밀레니엄 641 | 마무리 649
연표 652
감사의 말 663
옮긴이의 말 666
참고 문헌 671
사진 및 도판 출처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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