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흑백 일러스트와 함께 만나는 알베르 카뮈의 유작!
『최초의 인간』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3년 뒤, 마흔이라는 나이에 사고로 생을 마감한 알베르 카뮈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작품이다. 약 10년간의 구상을 거쳐 사망하기까지 7개월간 자신의 개인사 가운데서도 출생에서 열네 살까지 유소년기를 중심으로 써내려갔다. 뜨거운 상상력과 쉼 없는 열정이 오롯이 담긴 이 작품은 저자의 대표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판인 이 책은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으로 흑백 일러스트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묵직한 명암과 날카로운 선, 카뮈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날 것의 글이 만나 환상적인 조합을 자랑한다.
알제리를 배경으로 1950년대와 1920년대(회상)을 오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자크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결심으로 고향 알제리로 가는 배에 오르는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싫어하던 낮잠과 귀가 시간이 늦어 할머니에게 벌을 받던 일 등을 추억하며 자크는 아련한 그리움에 잠긴다. 귀향한 자크는 어머니와 재회하고 아버지에 관련된 과거의 일들을 묻는다. 어린 두 아이와 귀머거리인 아내를 남기고 징집을 당해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에게 자크는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크는 자신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친 초등학교 때의 교사 베르나르 선생님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 후 자크는 뿌리 뽑힌 식민지의 역사, 전통을 갖지 못한 이민들과 그중 하나였던 아버지, 역시 뿌리를 찾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며 자신이 태어났던 고장 몽도비를 찾는다. 식민지 알제리 이민의 후손인 부모에게 태어난 자크는 가족들을 위해 방학 기간 동안 돈을 벌어야했고,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이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알베르 카뮈 최후의 육성!
카뮈가 죽은 지 30여년 만에 출간되어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한 『최초의 인간』, 출간 20주년을 기념하며 흑백 일러스트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묵직한 명암과 날카로운 선으로 다시 태어났다.
모든 인간은 다 어느 만큼은 〈주워 온 아이〉이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그리고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타인에게로 〈눈뜨며〉 다시 태어나야 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김화영(옮긴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밝고 투명한 세상이었다면 예술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지은이)
장 자크 루소의 그것 못지않게 귀중하고 고통스럽고 진정한 고백, 미완성인 채 출판된 『최초의 인간』은 단번에 고전이 되었다.
-『레벤느망 드 죄디』
카뮈의 감성, 관대함, 강직함, 책임감, 긍지, 절대에 대한 목마름, 까다로운 요구……
그리고 꺼질 줄 모르는 슬픔과 더불어, 계속적인 저음의 반주인 양 언제나 존재의 저 밑바닥에서 타오르는 삶에의 탐욕스러운 의지.
-「르 몽드」
걸작…… 활자로 된 현존하는 성장 소설 중 가장 뛰어난 걸작.
-「보스턴글로브」
카뮈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과 그의 인생을 깜짝 놀랄 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그의 작품 중 가장 야심적이면서도 연민이 담긴 작품이다. 『최초의 인간』은 드라마틱하게 카뮈를 부활시켰다.
-「네이션」
『최초의 인간』은 아마도 카뮈가 남긴 모든 글 중 가장 정직하고 감각적인 작품일 것이다. 카뮈는 그의 모든 힘을 쏟아 이 작품을 썼을 것이다. 천재의 작품이다.
-『뉴요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 만에 영면한 카뮈의 유작,
30년 만에 세상에 선보여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민, 존재의 부조리성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다룬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 뒤인 1960년에 파리 근교의 빌블르뱅에서 자동차 사고로, 마흔이라는 나이로 보나 작가로서의 명성으로 보나 삶의 절정기에 생을 마감함으로써 문단과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사고 현장 주변에는 여기저기 카뮈와 동승자들의 물건이 흩어진 가운데, 검은색의 작은 가방이 하나 있었다. 그 가방 안에는 카뮈의 육필 원고가 있었는데, 그 원고가 바로 이번에 출간되는 『최초의 인간』이다.
카뮈가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인간』과 관련된 기록이 그의 『작가 수첩III』 속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51년이다. 그 뒤 1953년 10월경에 구상에 착수하여 1956년까지 약 3년간 꾸준히 등장 인물, 장면, 사건, 심리 등을 『작가 수첩III』에 메모해 두곤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이 소설에 대한 구상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시기(1956년 8월-1959년 5월)는 카뮈의 건강 악화뿐만 아니라 문단과 정치권의 공격이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그는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점에서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던 것이다.
3년 뒤인 1959년 5월에 『작가 수첩III』 속에 『최초의 인간』과 관련된 마지막 기록이 나타난다. 즉, 《5월. 작업 재개. 『최초의 인간』 제1부에 진척이 있다》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사망하기까지 카뮈는 약 7개월간 모든 열정을 이 소설의 집필에 바쳤다. 편집자의 말에서 딸 카트린이, 《때로는 마침표도 쉼표도 찍지 않은 채 판독하기 어려운 속필로 펜을 달려 쓴 144페이지의 원고》라고 표현했듯이 뜨거운 상상력의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카뮈가 사망한 1960년에 그의 부인 프랑신은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타자본을 작성해 시인 르네 샤르, 소설가 로제 그르니에를 비롯한 카뮈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이고 출판 여부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들은 모두 출판하지 않는 쪽으로 조언했다. 따라서 이 소설은 34년 동안이나 출판되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그 뒤 1980년대 들어 프랑신이 사망하고 문학 교사 출신인 카트린이 아버지의 전작품을 관리하게 되었다. 카트린은 우선 『작가 수첩III』을 정리, 출판한 후 카뮈의 지인들에게 『최초의 인간』을 다시 한번 더 읽고 출판 여부를 판단해 주라고 요청했다. 뜻밖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생각을 180도 바꾸어 출판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로제 그르니에는 출판에 찬성한 이유를 《이제는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하여 카뮈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ㆍㆍㆍㆍㆍㆍ 『최초의 인간』을 출판하는 최적의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그 증거로 이 책이 나오자마자 얼마나 요란하게들 떠들어대고 있는가ㆍㆍㆍㆍㆍㆍ》라고 한 잡지의 기사에서 밝히고 있다.
마침내 이 소설은 카뮈의 일생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1994년 4월 13일에 출간되었다. 책을 출간하면서 카트린이나 출판사, 카뮈의 지인들은 30여 년 전의 카뮈에 대한 공격이 되살아날까 봐 몹시 염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뮈의 미발표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은 파리의 서점가에 깔리자마자, 1주일 만에 초판 5만 부가 팔려 나가 급히 재판 인쇄에 들어가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유수한 신문, 잡지, 방송치고 이 책의 출간과 카뮈에 대한 재평가를 다루지 않는 매체가 거의 없었다. 이 같은 언론과 비평계의 전반적인 호평과 재평가, 나아가서는 카뮈의 《복권》을 일반 독자들은 예외적인 열광으로 뒷받침했다. 즉, 이 미완의 《밑그림》은 다른 모든 신간들을 제치고 무려 6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최상위의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또한 파리의 한복판에 있는 대형 서점 FNAC의 서적부 입구에 높다랗게 쌓여 있는 이 책의 무더기를 바라보면서, 길거리와 지하철 안에서 『최초의 인간』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치면서, 파리 시민들은 카뮈가 30여 년 만에 다시 그 젊은 얼굴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르 몽드」지 1994년 4월 22일자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6개국의 출판사가 번역 출판 계약을 맺어, 이 열기가 프랑스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최초의 인간』출간 20주년을 기념하며 흑백 일러스트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묵직한 명암과 날카로운 선으로 다시 태어나
『최초의 인간』 일러스트판은 『최초의 인간』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기획한 특별판이다. 카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묻혀져 있던 『최초의 인간』은 출간 후, 그의 대표작 『이방인』보다도 큰 환영으로 받으며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했다. 이 기록적인 책의 일러스트판을 맡은 이는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함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수많은 상을 거머쥔 흑백 일러스트의 거장 호세 무뇨스다. 무뇨스는 작업을 위해 직접 알제리를 방문하고 그의 독특한 그림체를 한껏 살려 흑백 일러스트를 고수하였다. 무뇨스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카뮈의 작품을 흑백으로만 작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림, 그것은 빛의 폭발에 다름 아니다. 내게 신적인 존재와도 같은 카뮈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호세 무뇨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영화「씬 시티」의 프랭크 밀러 감독이 인터뷰마다 그에게 큰 영감을 준 인물로 언급할 정도로 해외에서는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작가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등지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72년 그는 이탈리아에 정착하게 되었고 아르헨티나 작가 카를로스 삼파요를 만나 길고도 유익한 협업을 시작했다. 이때, 단연 돋보이고 현실적인 주인공 알랙 시너가 탄생했다. 날카로운 선, 묵직한 명암, 과장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등이 적절히 안배된 얼굴과 골격 표현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그의 독특한 그림체는 『최초의 인간』 일러스트판에서도 카뮈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날 것의 글과 만나 환상적인 조합을 자랑한다.
미메시스 출판사에서는 『최초의 인간』 일러스트판의 발간을 기념해 순회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합정에 위치한 앤트러사이트에서의 전시(10.24-11.22)를 시작으로 다양한 전시 공간, 특히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를 열 계획이다.
《최초의 인간》은 카뮈 자신이었다
원래 이 소설은 유년기ㆍ청장년기(정치적 입장, 알제리 문제, 레지스탕스)ㆍ어머니(아랍 문제, 식민지 문제, 서구의 운명) 등 3부작으로 구상되었는데, 카뮈의 돌연한 죽음으로 제1부인 유년기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유년기밖에 다루지 못한 미완의 원고라고는 하나, 《미완성이어서 독자를 더욱 감동시키는 고백》(르 몽드)이나 《미완성인 채 출판된 『최초의 인간』은 단번에 고전이 되었다》(에벤느망 드 죄디), 《한 위대한 작가가 죽는 순간까지 투명한 영혼으로 건축하고 있었던 환상적 성장소설》(피가로 리테레르)이라는 찬사에서 보듯이 카뮈의 유고작으로서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약 10년간의 구상을 거쳐 사망하기까지 7개월간 자신의 개인사, 특히 출생에서 열네 살까지 유소년기를 중심으로 뜨거운 상상력과 쉼없는 열정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이야말로 카뮈의 대표적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대적 배경-1950년대와 1920년대(회상)를 오가며
공간적 배경-알제리
제1부 아버지를 찾아서
돌투성이의 길 위로 굴러가는ㆍㆍㆍㆍㆍㆍ
주인공 자크의 출생 장면 - 식민지 알제리 이민의 후손인 자크의 부모 앙리 코르므리와 카트린(뤼시) 코르므리가 새로운 정착지 생타포트르 농장에 도착하고, 어머니 카트린이 도착하자마자 식당 여주인과 아랍 인 여자의 도움으로 두 번째 아이인 자크를 출산하게 되는 이야기.
생브리외
자크가 자신이 한 살때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프랑스 생브리외의 공동 묘지를 찾아가는 이야기. 이전까지 아버지에 대해 피상적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자크는 죽은 아버지의 나이가 스물아홉으로 자신의 (현재) 나이 마흔보다 훨씬 젊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회상의 동기가 되는 장
3. 생브리외와 말랑(J. G.)
자크가 오랜 친구인 퇴직 세관 관리 빅토르 말랑을 만나 저녁식사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해 알아 보겠다는 결심을 밝히는 이야기. 빅토르 말랑은 저자 카뮈가 장 그르니에를 염두에 두고 구상한 인물로 그르니에에 대한 카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장.
4. 어린 아이의 놀이들
고향 알제리로 가는 배 위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 싫어하던 낮잠과 피에르, 막스, 장, 조제프 등 친구들과 뛰어 놀던 기억, 귀가 시간이 늦어 할머니에게 벌을 받던 일 등을 추억하며 아련한 그리움에 잠기는 자크.
5. 아버지. 그의 죽음. 전쟁. 테러
귀향한 자크가 어머니와 재회하고 아버지에 관련한 과거의 일들을 묻는 이야기. 어린 두 아이와 불구(귀머거리)인 아내를 남기고 징집당해 떠난,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젊은 아버지, 가난하고 배운 것 없었지만 정의로웠던 아버지에 대한 자크의 애틋한 감정이 나타나는 장. 현재로 돌아와 잠깐 언급되는 폭탄 테러를 통해 당시(1950년대)의 불안한 알제리 정국을 엿볼 수 있음.
6. 가족
할머니와 관련한 회상들. 구두창 닳은 정도를 검사받던 일, 부르기 싫은 노래를 부르곤 했던 일, 돈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일, 영화관에서 할머니에게 자막을 읽어 주던 일 등 가난과 무지 때문에 빚어졌던 불유쾌한 경험들을 회상하는 이야기.
에티엔
반벙어리인 외삼촌 에티엔(에르네스트)과 관련한 회상들. 활력 있고 매력적이던 삼촌의 성격과 용모, 삼촌과의 사냥. 수영 등 할머니와 관련한 추억들에 반해 즐거웠던 추억들을 회상하는 이야기.
중복된 6. 학교
자크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친 국민학교때 교사 베르나르 선생님와 관련한 이야기. 오랜만에 베르나르 선생님을 찾아간 자크가 대화를 나누며 학창 시절 생동감이 넘치던 수업 시간, 벌 받던 일,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선생님의 노력 등을 회상하는 장.
7. 몽도비:식민지와 아버지
자크가 자신이 태어났던 고장 몽도비를 찾아가는 이야기. 뿌리 뽑힌 식민지의 역사, 전통을 갖지 못한 이민들과 그중 하나였던 아버지, 역시 뿌리를 찾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생각 등 《최초의 인간》이라는 소설 제목의 상징성이 드러나는 장.
제2부 아들 혹은 최초의 인간
1. 중고등학교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학창 시절을 보내던 것을 회상하는 이야기.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특히 조르주)과의 우정, 좋은 성적을 보여 집안의 자랑이 되었던 일, 즐겨 했던 축구 시합 등을 회상하는 장.
닭장과 암탉 목따기
용감하다는 할머니의 부추킴으로 닭장에 닭을 잡으러 갔던 일과 닭을 잡던 끔찍한 장면을 지켜 봐야 했던 기억을 회상하는 이야기.
목요일과 방학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목요일과 관련된 추억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방학 기간의 괴로운 기억들을 회상하는 이야기.
2.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아무것도 물려 받은 것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 가야 했던 자신의 삶 - 표면적으로는 주인공 자크이나 거의 카뮈의 직설로 표현됨 -에 대한 산문적 서술.
부록
낱장들
작품 구상 노트 사이에 끼워져 있던 낱장의 메모들.
노트와 구상
카뮈가 구상하던 작품의 체재, 줄거리, 인물 성격 등을 적어 놓은 글들.
두통의 편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직후 카뮈가 국민학교때 스승 루이 제르맹에게 보낸 편지와, 1960년 카뮈가 보낸 브리스빌의 저서 『카뮈』를 받고 루이 제르맹이 답장으로 보낸 편지.
『재평가』, 토니 주트, 열린책들, 2014에서 발췌.
알베르 카뮈, 《가장 훌륭한 프랑스인》
알베르 카뮈는 1960년 1월 4일 마흔여섯 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카뮈의 명성은 추락하고 있었다. 수상 당시 비평가들은 너나없이 달려들어 수상자를 매장하려 했다. 우파에서는 자크 로랑이 카뮈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노벨이 끝장난 작품에 왕관을 씌운다》고 선언했고, 좌파 성향의 『프랑스 옵세르바퇴르-』지는 스웨덴 한림원이 젊은 작가를 찾아냈다고 믿었겠지만 실상은 《조기 경화증》을 확인했다고 썼다. 카뮈의 최고 작품은 한참 뒤에야 나온 것 같다. 카뮈가 진정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발표한 것은 여러 해 뒤의 일이다.
이처럼 평단의 존경을 잃어버린 데에는 카뮈에게도 일부나마 책임이 있다. 카뮈는 당대의 유행에 부응하여 철학적 성찰에 집중했지만 그러한 일에는 어울리지 않았고 재능도 평범했다. 『시시포스의 신화』(1942)는 금언으로 가득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반항하는 인간』(1951)에서 카뮈는 서정적인 혁명의 환상에 따르는 위험성에 관하여 몇 가지 중요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레몽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에서 거의 똑같은 견해로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던 반면, 카뮈는 거의 독학으로 익힌 순진한 철학적 성찰 때문에 사르트르의 잔인한 반격에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 결과 《정통》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카뮈의 신뢰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카뮈의 대외적 자신감도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게 당대의 평가에서 자기 분야가 아닌 철학적 논쟁에 끼어들었다 실패한 일 때문에 『이방인』과 『페스트』의 저자로서 갖는 카뮈의 문학적 평판이 부당하게 깎였다면, 생애 마지막 십 년간 카뮈를 가장 무겁게 짓누른 것은 프랑스의 주된 대중적 지식인이요 시대의 도덕적 대변자라는 역할이었다. 레몽 아롱의 말을 빌리자면, 카뮈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문 「콩바」에 쓴 사설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제4공화국의 딜레마와 실망스러움에 직면한 레지스탕스 세대의 도덕적 논조를 결정한 것은 바로 카뮈의 금언이었다. 1950년대 말이 되면 이러한 짐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카뮈의 말과 글에서 늘 불안의 근원이었다. 카뮈는 처음에는 그 책임을 받아들였다. 1950년에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1959년 12월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분노와 좌절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누구도 대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들다. 나는 그 누구의 안내자도 아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안다고 해도 흐릿하게만 알 뿐이다.》
카뮈와 그의 독자들에게 가장 나빴던 것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비극이 제기한 딜레마였다. 당대의 모든 지식인처럼 카뮈도 프랑스의 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카뮈는 정부가 아랍 민족주의자들에 맞서 《더러운 전쟁》을 수행하면서 고문과 테러를 자행했다고 비난했으며, 1930년대 이래로 계속된 아랍 원주민에 대한 식민주의적 차별을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소리 높여 비판했다(당시는 훗날 식민지 반대 투쟁에서 두드러진 파리의 지식인들 중 다수가 프랑스의 재외 국민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욕구에 관하여 거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던 때였다). 그러나 카뮈는 알제리 태생으로 몰락한 유럽인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카뮈는 알제에서 성장했으며, 카뮈가 써낸 최고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곳의 경험에서 나왔다. 유럽인이 없는 알제리도, 뿌리가 잘려 나간 토착 유럽인도 상상할 수 없었던 카뮈는 일종의 중도를 묘사하려 애썼다. 카뮈의 말로 하자면, 《아랍인들에게는…… 큰 보상이, 명백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온전히 프랑스가 해야 하며,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프랑스나 알제리는 이 문제를 두고 점점 더 심한 의견 대립을 보였으므로, 대범한 타협을 모색했던 카뮈의 노력은 버림받고 당치않은 것으로 비치게 되었다. 카뮈는 물러나 침묵했다.
카뮈의 평판은 사후에도 계속 하락했다. 식민지의 모국인 프랑스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알제리의 운명과 아랍 사회든 유럽 사회든 그 안의 다양한 공동체들이 처한 운명에 무관심했다. 지식인들로 말하자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들이 가졌던 관심은 카뮈를 움직였던 관심과는 크게 동떨어졌다. 카뮈는 그러한 관심 때문에 경멸과 비아냥의 대상이, 결국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카뮈는 점점 더 관용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의 과격한 정치화, 만년의 사르트르와 그 추종자들의 자멸적 , 학자들의 《반인도주의적》 유행, 새로운 양식의 문학,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작가로서 경험한 지위의 하락에 짓눌렸다. 장 다니엘은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창립자이자 편집자로서 1960년대의 자기 시대를 돌아보면서 《나의 청년기에는 문인들이 생각하기를 가르치는 스승 역할을 했는데, 곧 그와 같은 역할은 인문학에서, 즉 역사와 사회학, 민족학, 철학에서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상하곤 했다. 롤랑 바르트와 알랭 로브그리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미셸 푸코의 세계에서, 카뮈는 시대에 뒤졌다. 사람들이 카뮈의 작품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방인』과 『페스트』, 『칼리굴라』는 리세와 대학교의 교과 과정에서 교과서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으며 수백만 외국 학생들의 독서 목록에 올라 있었다(지금도 그러하다). 알베르 카뮈는 생존했을 때에나 사망 직후에나 세계적인 《문호》였다. 그리고 이 또한 카뮈가 비난을 받는 이유였다.
그러므로 신문의 1면에서 카뮈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얼핏 보아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 1994년, 쓰인 지 30년이 지나 미완성 형태로 뒤늦게 출현한 카뮈의 마지막 소설은 출판계에 대성공을 가져왔다. 『최초의 인간』은 지금까지 2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러한 관심의 부활은 분명히 뜻밖의 현상이 아니다. 저무는 미테랑 시대의 초라하고 사악한 대중적 분위기에서 청아한 도덕의 목소리는 어느 프랑스 평자가 음울하게 말했던 것 이상으로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학적 유산의 지위가 쇠락하고 소홀히 취급되고 있음을 냉혹히 인식하게 되었다. 알베르 카뮈는 위대한 프랑스 문인들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 사람이었고 로제 마르탱뒤가르와 쥘 로맹, 앙드레 지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세계와 이어지는 고리였다. 어떤 평론가는 『최초의 인간』이 거둔 성공을 깊이 숙고하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우연한 사고로 죽음으로써 숙명이자 죽음 저편의 신호로, 프랑스 문학이 대접을 받았던 시대가 보내는 질책으로 바뀐 훌륭한 삶의 신화를 축하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러한 견해는 진실을 담고 있지만, 카뮈가 당대에 가져온 영향을 평가하려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략》
『최초의 인간』은 카뮈가 앞서 썼던 글들의 요약이고 발전일 뿐만 아니라(앞선 글들에서 하나의 어구까지 되풀이되는 것이 많다) 카뮈의 관심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현재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중요하지 않은지를 일깨우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카뮈가 초기에 명성을 얻는 데 기여했던 《부조리》 개념은 지금은 대체로 카뮈가 장소와 감각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시포스의 신화』의 한 대목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환상과 빛이 갑자기 제거된 세계에서는 외계인이나 이방인처럼 느낀다. 그는 잃어버린 고향의 기억이나 약속의 땅에 대한 희망을 빼앗겼기에, 그 유랑생활을 구제할 방도는 없다. 한 인간과 그의 삶 사이의 절연, 배우와 무대 사이의 이와 같은 절연을 부조리의 느낌이라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카뮈는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이 『페스트』와 특히 『이방인』에서 배경이 되는 알제리의 의미를 놓쳤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판자들이나 찬미자들이나 가릴 것 없이 카뮈의 문학이 아닌 글에 담긴 취지를 과도하게 해석했고 잡아내지 못했다.
『최초의 인간』을 읽으면 카뮈 저작에서 가장 오래갈 메시지의 하나가 불편함이라는 점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 카뮈는 파리에서 아웃사이더, 즉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에서 사용된 바와 비슷한 의미의 이었다. 카뮈가 지식인의 역할에서 제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두 가지 상충하는 인격이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그중 하나의 인격만 이해하고 평가했다. 알제리 분란 중에 카뮈가 다른 하나의 인격을 설명하려 했을 때, 따라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양면성을 설명하려 했을 때, 이를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중해는 내 안에서 두 세계를 갈라놓았다. 한 세계에서는 측정된 공간 속에 기억들과 이름들이 보존되었으며, 다른 세계에서는 모래 바람에 쓸려 인간의 흔적이 아주 먼 곳으로 사라졌다.》 이러한 두 세계의 분리 때문에 카뮈는 늘 괴로웠다. 카뮈는 일찍이(1939) 『빵과 포도주』의 서평을 쓰면서 논평을 위해 한 대목을 골랐는데, 실로네의 영웅이 농민에 관한 지나친 이론화의 위험성과 그 결과로 농민을 더욱 잘 모르게 되는 위험성을 곰곰이 생각하는 부분이다. 카뮈도 연락이 끊어지는 위험을, 누군가의 뿌리를 그가 발견하기도 전에 잘라 버리는 위험을 걱정했다(마지막 작품에서도 걱정하고 있다). 지침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상태를 꿰뚫는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이 직관 덕에, 카뮈의 윤리학은, 그 한계와 책임의 윤리학은 특유의 권위를 얻게 되었다.
당대의 프랑스에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도덕적 권위이며, 이는 『최초의 인간』이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책은 비록 완성되지 않았고 다듬어지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점에서 훌륭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카뮈의 상속인들과 출판사 갈리마르는 이미 추락한 저자의 평판에 더 해를 입히지는 않을지 염려하여 몇십 년간 보류했다가 신중하게 책을 출간했다. 오늘날 상황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르다. 비시 정권이 여전히 욱신거리는 상처로 남아 있고 최근의 거물 지식인들은 당혹스러운 소환장 더미로 전락한 상황에서, 20년간 자국의 난처한 역사를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고통스럽게 조사한 끝에, 정당한 인간 카뮈는, 선견지명이 있던 어느 평자의 말을 빌리자면, 《매우 비열한 시대의 가장 고귀한 증인》으로 남았다. 전자기기 너머의 청중이라는 찬미의 거울 앞에서 멍청하게 멋이나 부리며 자신을 높이는 미디어 지식인의 시대에, 카뮈 특유의 정직함은, 예전에 학교 선생이 말했던 《너의 본능적인 정숙함》은, 거짓 복제품이 판치는 세상에서 걸작 수제품이라는 진정한 작품의 매력을 지닌다. 옛 친구의 평판에 먹칠하기 위해 정말로 많은 일을 했고, 카뮈가 살아서 읽었더라면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폭력과 테러를 옹호했던 장 폴 사르트르는 『프랑스 옵세르바퇴르』에 기고한 카뮈의 부고 기사에서 자신의 잘못을 크게 바로잡았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쓴다. 카뮈는 《작품으로써 프랑스 문학계의 매우 독창적인 면모를 이룬 도덕가들의 긴 계보를 잇는…… 현대의 계승자를 대표한다.》 사르트르의 평가는 분명히 옳았고, 뒤늦게 출판된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소설은 프랑스인들이 지난 30년간 카뮈만이 낼 수 있는 또렷한 목소리를 놓치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그 외침을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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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편집자의 말
제1부 아버지를 찾아서
돌투성이의 길 위로 굴러가는······
생브리외
3. 생브리외와 말랑(J. G.)
4. 어린 아이의 놀이들
5. 아버지. 그의 죽음. 전쟁. 테러
6. 가족
에티엔
중복된 6. 학교
7. 몽도비:식민지와 아버지
제2부 아들 혹은 최초의 인간
1. 중고등학교
닭장과 암탉 목따기
목요일과 방학
2.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부록
낱장들
노트와 구상
두통의 편지
?긴이의 말
알베르 카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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