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공백처럼 남아 있는 모던의 시대,
당시의 취향과 안목으로 그 시대 우리 집을 조명한다!
왜 우리는 민속촌 한옥보다 북촌 한옥에 더 열광할까?
언제부터 ‘우리 집’ 하면 경사지붕의 벽돌집을 떠올리게 됐을까?
반닫이는 어떤 이유로 현대 공간에도 잘 어울리는가?
행복한 우리 집의 기원 『모던의 시대 우리집』. 집이 문제다. 도시를 가득 채운 빽빽한 아파트에 네모난 내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우리에겐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목표가 되었다. 집값이 치솟으면 한편에서는 웃고, 한편에서는 울상을 짓는다. 집이 뭐기에?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한 우리 집을 꿈꾼다. 획일화된 공간이라도 나름의 취향을 한껏 발휘해 나만의 집을 꾸미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렸던 우리 집은 네모난 아파트가 아니었다. 세모꼴의 경사지붕이 있는 벽돌집에 넓은 창이 나 있고, 집 앞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이 있었다. 그런 집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 집 하면 대체로 그런 모습으로 그렸다. 도대체 이런 집은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오랫동안 우리의 근대 건축을 답사하고 탐구해온 저자 최예선이 ‘우리 집의 기원’을 찾아 나섰다. 출발점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모던 중국, 모던 유럽 그리고 모던 일본이 뒤섞이고 절충되어 변용되던 그때 그 시절,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활보하던 시대다. “모던 시대는 의식주는 물론, 교육과 대중문화, 언어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까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삶의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던 시절이다. 생각과 상황의 괴리, 생활과 공간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수없이 실험한 결과로 모던의 특징인 혼종의 문화가 탄생했다.”
저자는 건축사적인 엄격한 언어 대신 삶에 맞닿은 일상의 언어로써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살뜰히 복원한다. 특히 정원, 벽돌집, 도시 한옥, 양관, 가구, 적산 가옥이라는 주제어를 바탕으로 모던의 감수성과 의지가 만들어낸 집, 그 공간의 특별함과 대담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낡은 관습을 타파하고 불편한 집을 바꾸고 예술을 위대한 것으로 만들고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시절, 행복한 우리 집의 원형이 세워지던 그때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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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모던 정원의 풍속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원’은 이미 멀어진 지 오래된 공간이다. 하지만 모던의 시대에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문인과 예술가들은 정원을 가꾸는 데 열심이었다. 작가 이태준이 애지중지 꽃나무를 키우던 수연산방은 여전히 성북동에 남아 있고,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던 정원은 그의 아름다운 수필 속에 남아 있다. 그들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비 오는 날 파초의 넓은 잎에 떨어지는 장쾌한 물소리를 좋아하고, 가을에 낙엽을 태우며 감상에 젖던 그 시절의 정원으로 들어가본다.
벽돌 한 장이 바꾼 집의 역사
현실의 집 말고 ‘비둘기처럼 다정한’ 가족을 위한 이상적인 집은 늘 벽돌집이었다. 그러다가 다세대 빌라가 유행하던 1980년대는 저렴한 집의 상징으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한때 벽돌집은 교양 있는 신식 생활을 보장하는 고급 주택의 대명사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 벽돌 건물인 번사창에서부터 한옥과 양식의 절묘한 만남이 돋보이는 선교사들의 집, 근대 벽돌 건축의 최고 영예라 할 명동 성당 그리고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표현했던 김수근의 공간 사옥까지 서양식 ‘쌓기’와 우리식 ‘세우기’의 예술이 빚어낸 근대 벽돌 건축의 현장을 찾아간다.
그전과 다른 집, 북촌 한옥
북촌의 한옥 마을이 조선의 양반 마을이 아니라 1930년대에 생긴 집들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채 백 년도 되지 않은 한옥이었다니!”라며 맥빠진 얼굴이 되기도 한다. 북촌에 도시형 한옥이 대량으로 지어진 때는 우리 건축의 개량 담론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대로, 잡지와 신문들은 생활 개조와 주택 개량에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도 서촌, 삼청동, 익선동, 보문동, 서대문 등에 여전히 남아 있는 한옥들은 ‘도시형 한옥’이라 부르는 미니 한옥이다. 새로운 모던 한옥은 한때 ‘집장사 집’으로 폄하되어 무분별하게 버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작은 모던 한옥이야말로 도시 생활에 밀접하게 맞닿은 삶의 집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지금 삶의 해답을 들려줄 한옥은 19세기의 전통 한옥이 아니라 도시의 삶에 맞춰 실험하고 발전해온 20세기의 모던 한옥들이라고 강조한다.
집 짓다 쫄딱 망한 조선 귀족
당시에 돈 있는 집들은 대개가 일제 병합에 앞장선 친일파들이거나 구황실의 혈족, 왕족들이었다. 이들은 일제로부터 귀족의 작위와 은사공채를 받아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았다. 지금도 부자들이 가장 열중하는 투자 대상은 부동산이듯 당시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이들을 매혹한 것은 거대한 양관이었으니…….
운현궁의 승계자인 이준용(흥선대원군의 손자)이 운현궁의 노락당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은 웅장한 양관, 경성 최고 갑부로 이름을 날린 민영휘가 지은 가회동의 거대한 별장, 지금은 백인제 가옥으로 불리는 당시 한성은행장 한상룡의 상류층 한옥 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순정효 황후의 백부 윤덕영이 인왕산 언덕에 지은 벽수산장이었다. 프랑스 궁전을 방불케 하던 이 삼층 양관은 벽돌이며 철재며 모든 재료를 외국에서 수입했고, 응접실 천장에는 두꺼운 유리로 대형 수족관을 만들어 금붕어가 떠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불타 사라진 벽수산장을 현재 남아 있는 도면을 바탕으로 하나씩 재구성해 펼쳐 보인다.
모던 가구가 집에 들어올 때
삶이 바뀌면 집이 바뀌고,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가구를 불러들였다. 특히 우리의 대표적인 수납가구인 반닫이는 돈궤로 불리다가 서양문화와 섞여 책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등나무 의자는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가구로 당당히 응접실에 자리했고, ‘조선단스’로 통칭되던 새로운 모던 가구가 등장했다. 백동 장석으로 뒤덮인 반닫이와 화려한 자개가 번쩍이는 장, 남녀상열지사가 그려진 화각장과 복 복(福)자의 향연이 펼쳐지는 문갑…….
그러나 근대 시기에 등장한 공예품들은 한때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합목적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아름다움의 본질과 무방하다며 외면받았다. 하지만 한국미라는 것이 지극히 검소하고 장식을 극도로 절제한 사물에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장식과 이야기가 넘쳐 흐르는 그 시대의 맥시멀한 취향을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적산 가옥은 누구의 집인가?
요즘 용산이 뜨거운 감자다. 저자는 일찍이 용산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이 일대를 그 옛날 도면까지 펼쳐가며 탐구해왔다. 용산은 일본인들에 의해 처음 개발되어 당시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주택지였다. 용산역이 들어서고, 일본 군영이 넓게 자리 잡아 군인 사택지가 조성되고, 조선은행 사택, 조선총독부 직원 사택 등이 지어졌다. 아직도 용산 일대에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이 적산 가옥들은 이제 일본인들보다 우리가 더 오래 거주하면서 우리 식대로 고쳐 살고 있다. 한때 부유한 일본인들의 고급 주택지로 각광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용산. 지금은 미군 기지가 이전하고 재개발로 들썩이는 이 지역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레트로의 기원, 모던 시대
모던 시대의 집은 기이한 공존의 공간이었다. 서양식 응접실과 일본식 다다미 방, 장판을 깐 온돌 안방이 한 집에 공존하기도 했다. 집 속에 국경이 그어진 것 같은 이 기이한 공간을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변화하는 삶의 방식과 살고 있는 공간 사이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어떤 시도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혼종의 장면을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오히려 더 디테일하게 다가간다.
2020년대는 분명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콘텐츠를 담는 공간 재생 프로젝트가 많아질 것이다. 이런 건물들은 시간과 역사와 철학이 담보된 헤리티지를 요구한다. 모던의 시대가 담고 있는 생활의 철학과 변화무쌍한 아이디어들은 다가올 시대 우리의 집에도 한층 깊은 이야기를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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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 그날 그 집에서 생긴 일
1 별서 정원에서 가로수길까지: 모던 정원의 풍속화
동네마다 자기네 꽃이 있다 / 일고 지혜도 없이 성큼성큼 자라나는 / 이태준의 애지중지 파초는 어디로 갔을까? / 꽃의 생명을 찾아 그림 속에 옮겨놓고 / 뜰 복판에 서서 낙엽을 태우며
2 가장 서양의 것에서 가장 우리의 것으로: 벽돌 한 장이 바꾼 집의 역사
우리 모두의 집이었던 붉은 벽돌집 / 쌓기와 세우기의 기술 / 무너지고 쌓고 무너지고 다시 쌓는 마음 / 가장 서양의 것에서 가장 우리의 것으로
3 도시 한옥의 관능과 예술: 그전과 다른 집, 북촌 한옥
우리는 언제나 작은 집에 매혹된다 / 사람의 삶은 미와 관능을 경유하고 / 삶이 달라져야 집이 달라지며, 집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 / 집의 시대, 대세는 도시형 한옥 / 뉴모던 한옥의 관능과 예술
4 불란서 양관이라는 유령: 집 짓다 쫄딱 망한 조선 귀족
집 짓다 쫄딱 망한 부자들 / 운현궁에서 사동궁으로, 조선 귀족의 집 / 가회동 푸른 숲이 사라지니 올망졸망 집들이 들어오고 / 불란서 양관이라는 유령, 벽수산장
5 조선단스를 들일까, 모던 캐비닛을 들일까: 모던 가구가 집에 들어올 때
미국 공사도 앉고 조선 귀족도 앉던 등나무 의자 / 돈궤에서 책상으로 변모한 반닫이 / 욕망과 우아함, 그 사이의 조선단스 / 테일러 상회에서 화신백화점까지, 모던 시대의 상점가 / 본질에 무용하나 끝끝내 아름다운 기물들
6 일본 사람이나 살던 이층집: 적산 가옥은 누구의 집인가?
먼지 속에 사라지는 이야기, 쓰루가오카 가옥 / 문화주택, 일본 사람이나 살던 이층집 / 임시 거처, 떠나온 자들이 떠도는 땅 / 적산 가옥에 쓰는 상량문
에필로그 / 우리는 집에서 어떻게 세상을 만나는가?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