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평민이 된 비운의 왕세자 이은의 생애를 조명하다!
소설가이자 사학자 송우혜의 「마지막 황태자」 제4권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그의 시대에 관한 10여 년간의 연구를 마무리한 다큐 소설이다. 사학자로서의 세밀하고 치밀한 역사적 고증이 소설가로서의 상상력과 조화를 이루었다. 어린 시절에 인질이 되어 가족과 나라를 떠나 일본에서 살다간 이은의 애처로운 삶을 따라간다. 일본에 의한 망국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겪어야 한 대한제국 황실의 비극적 연대기와 저항기뿐 아니라, 대한제국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열망과 정열, 고통과 아픔의 역사를 오롯이 엿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주권과 인권을 침탈당한 국권피탈 100주년을 정리하면서 치유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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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제국의 흥망은 영친왕 이은의 생애였다
-일본인이 된 조선 왕과 비운의 황실 가족사
흔히들 한국은 붓의 나라이고 선비의 나라이며, 일본은 칼의 나라이며 무사의 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1910년 국치는 군사력을 강국의 척도로 삼던 폭력의 시대에 붓과 선비의 나라가 당할 수밖에 없는 치욕이었을까. “너의 적을 사랑하라. 너의 결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라는 경구에 따르자면, 일본은 우리가 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웃이다. 연년세세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결점을 다각도로 드러내어 극명하게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서의 탄식은 두렵게도 늘 진실이어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왕조시대의 군주제도가 드러냈던 폐해가 오늘날 우리의 눈에 결코 낯설지 않다. 겉모습만 바꾼 채 지금, 여기, 우리 속에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 대한제국을 강타해서 멸망시켰던 외세의 탐욕스러운 폭력 역시 겉모습만 바꾼 채 지금, 여기, 우리 곁에 현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일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욱 절실한 바가 있다.(9쪽)
독도. 이 조그만 섬을 두고 한국과 일본은 매년 해묵은 영토 분쟁을 반복하고 있다. 잊어버릴 만하면 불거지고 묻혔다 싶으며 튀어나오는 독도 문제. 1945년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의 고통과 되살아나는 제국의 망령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도 넓히지도 못한 채 오늘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호한 거리 사이에 영친왕 ‘이은’이 있다.
영친왕 이은의 생애와 대한제국 황실 이야기를 다룬 (전 4권)가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로 완간됐다. 2010년 12월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 3권이 나란히 출시되며 “최소한의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역사서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은 후 약 1년 만의 완간이다.
≪윤동주 평전≫(푸른역사)을 통해 “견고한 작가이며 사학자”(고은)임을 인정받은 저자 송우혜는 풍부한 자료 섭렵과 빈틈없는 고증으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폭넓은 식견, 독보적 연구, 방대한 문헌자료를 통해 이은의 생애와 그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시리즈는, 정확한 역사 해석을 위해 만년의 나이에 같은 주제로 박사학위에 도전하기까지 한 저자가 혼신의 공을 들인 10년간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치밀한 자료 검증이 소설가로서의 상상력과 조화를 이뤄 한층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 조선 황태자가 일본 왕족으로 산다는 것
4권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는 부친 고종의 붕어로 미뤄졌던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1920년 4월 28일 일본식도 조선식도 아닌 서양식 예복을 입은 혼혈결혼식이 거행된다. 이들의 애매한 복장은 조선인들의 반발을 감안한 조치였다. 이 결혼을 계기로 완벽한 일본인 ‘이은’으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당시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에 대한 언론과 민중의 반응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기사에서 이은을 가리켜 ‘적자賊子’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적자란 ‘임금이나 부모에게 반역하는 불충, 불효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왕조시대 언어 감각으로는 사람으로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극심한 욕에 해당했다. 게다가 그를 가리켜 사람이 아닌 ‘금수禽獸’ 곧 ‘짐승’이라고 격렬하게 매도하고 있다. 이은을 더 아래로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비천한 자리로 밀어버린 것이다. (62쪽)
이은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감은 그의 첫 아들 이진에게까지 미친다. 근현식 차 한국을 방문한 이은 부부는 누군가의 독살로 아들 ‘이진’을 잃는 슬픔을 겪는다. 이는 조선 왕실에 일본인의 피가 섞이도록 놔둘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에서 무기력한 이은의 모습, 제국의 군인으로 안락하고 평안한 시기를 보낸 이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동안 이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을 소개하며 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고 있다.
한 예로 동경저 제2종묘 문제를 들 수 있다. 1938년 이은은 종묘에 모신 81위位의 위패를 베껴다가 동경 어전의 3층 방에 모셔놓고 한식과 추석에는 꼭 다례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동경저에 제2종묘’를 마련한 것이라며 이은의 민족의식을 높이 평가하는 게 현재까지 일반 정서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본질을 보지 못한 견해에 불과하다. ‘종묘에서 치르는 나라의 제사’를 ‘개인 집에서 치르는 가문의 제사’로 격을 떨어뜨리고 의미를 대폭 축소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은이 지녔던 조선왕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의식의 실체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는 조선왕조를 일본제국 안에 있는 한 제후의 가문으로 여긴 것이다”라며 의견을 달리한다.
⊙ 누드화를 그리는 이은 전하
평생 일본제국의 군인으로 만족하며 살아왔던 이은. 집 안에서도 늘 군복을 입을 정도로 그는 제국의 한 충실한 군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일본의 패전과 제국의 멸망은 이은 자신의 몰락과 동의어였다.
이은이 일본의 항복 뒤에 보인 또 다른 황망한 처신에 관한 증언이 조중구의 기록에 담겨 전해진다. 당시 내각 관방장관 유교도楢橋渡는 새로 실시될 일본의 신헌법 초안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조중구는 이은이 그를 만날 때 배석해서 목격한 일을 회고록에 기록했다. “이왕은 N(내각 관방장관)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자, 내 면전에서 끝까지 자신의 입에서 나와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을 해버렸다. ‘내 지위는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무쪼록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의 대우를 해줄 수없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조중구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이은에 절망하고 분노와 슬픔에 차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 증언은 당시 이은의 의식이 얼마나 철저하게 일본화되어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311쪽)
이은이 뿌리를 잃은 것이라고 말한다. 뿌리 없는 자는 나약하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뿌리 깊은 데서부터 치고 올라가서 줄기와 가지를 뻗고 잎과 꽃을 피우는 생명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았던 이은에게는 조국이 독립했다는 사실과 그 조국에 자신이 어떤 역할이나 기여를 해야 한다는 진정한 인식이나 각오가 없었다. 그저 이전과 같이 일본에 살면서 융숭한 대우와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한 사람의 가엾은 퇴역 장군에 불과했다.
그는 할 일이 없는 것에도 적응이 안 되었다. 실업자가 된 후에도 군대에 복무할 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쩔쩔매던 이은은 지방 여행, 난초 기르기, 스키 타기, 사진 찍기 등의 취미를 가졌다. 그런 중에 매우 특이한 취미생활을 하나 찾아냈으니 바로 그림 그리기, 그중에서도 ‘여성의 누드화 그리기’였다. 실제 누드 모델을 앞에 두고 직접 보면서 그리는 것이었다. 오래 전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은의 누드화를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은은 과묵하고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은 성품으로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 전쟁이 끝나고 지위, 직업, 재산 등 삶의 토대 대부분을 잃은 상태가 되자 하필 젊은 여성의 누드 그리기에 마음을 쏟았다는 사실이 기이하다. 당시 방자는 남편이 게이샤의 누드를 그린다는 사실을 왕족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로 여기고 있었다고 하니, 이은은 방자가 매우 싫어하는데도 누드화 그리기를 계속한 것이다. 그가 젊은 여자의 벗은 몸을 그리면서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또는 잊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320쪽)
⊙ 누가 덕혜옹주를 미치게 했는가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에서는 이은 외에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왕공족 덕혜옹주, 이건 공, 이우 공의 일본에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례로서 이은의 이복동생 덕혜옹주의 생애의 실체를 바르게 찾아내고 조명한 점은 가장 큰 성과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나 저술가들은 덕혜옹주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이유로 ‘생모 양귀인의 죽음’이나 ‘일본어가 서툴러서 학습원 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점’ 등을 꼽았다. 그러나 저자는 모두 사실에 맞지 않는 지레짐작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덕혜옹주는 일반적인 짐작과 달리 반일정서에 전혀 노출된 일이 없이 한결같은 친일정서 속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부터 고종이 덕수궁에 세운 유치원에서 일본인 교사에게서 배우기 시작했고, 일본에 유학가기 전까지 계속 일본인 교사를 두어 일본어에 능통했다. 일본인 학교인 일출소학교에 다닐 때는 일본어 동시들을 써서 “동시의 천재!” “시의 여왕!”이라는 칭송까지 받았고, 그 동시들에 유명한 일본인 동요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서 조선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널리 불렸었다. 일본 학습원에 유학한 뒤에도 공부를 잘해 당당한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덕혜옹주가 학습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8월부터 추진되어 신문에도 널리 보도되었던 일본 황족 산계궁 등마왕과의 결혼설이 1929년에 깨지자 그 충격과 실망으로 신경쇠약 증세가 생겼고, 끝내 정신분열증으로 악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덕혜옹주가 우여곡절 끝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몸으로 1931년 5월 8일에 대마 번주 가문의 종무지 백작과 결혼했을 때, 조선의 신문들은 그들의 결혼을 보도하면서도 제대로 된 결혼사진을 싣지 않았다. 심지어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조차 두 사람이 각자 따로 찍은 평상복 차림의 명함판 사진을 실었다. 그 결혼에 대한 조선 민중의 강한 반감을 감안한 결과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함께 찍은 결혼사진이 소개되었다.
⊙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균형을 성취하다
형식이 내용을 규제한다고 하지만 목적 또한 형식을 규정하는 법이어서, 이은의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 소설의 여러 장르 중에서 ‘다큐멘터리 소설’이라는 형태를 선택했다. 심하게 왜곡되어 있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었고, 또 그 실체가 지닌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형식에 담는 것이 매우 요긴했다.(5쪽)
다큐적 서술기법을 동원해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역사소설을 쓰려고 한 데는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먼저, 요즘 크게 유행하고 있는 ‘역사소설’들과 전혀 다른 ‘역사소설’도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두는 서술이 정도이며 “정도를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자타自他에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이란 장치를 통해 대중들에게 보다 재미있고 입체적으로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알리고자 한 것이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역사소설’이 머릿속 상상에 의해 멋대로 꾸며진 ‘역사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스케일도 크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역사적 인물과 그 시대가 지녔던 함축, 격동의 폭은 대부분 인간의 보편적 상상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망국이라는 이름으로 꼭꼭 감추어둔 채 외면하고 싶은 역사가 있다. 그 시기는 바로 ‘대한제국’이라 불린 시대였다. ‘대한제국’은 우리 역사상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불과 13년 동안 사용되었던 극히 단명한 국호다. 그러나 그 의의는 특별하다. 우리 역사상 왕王이 다스리는 나라인 ‘왕국’이 아니라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임을 뜻하는 ‘제국’이라는 국호를 쓴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이 존립했던 때는 매우 고단한 시기였다. 우리 민족에게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거센 파고가 사납게 몰아치던 시대였다. 그와 같은 격변의 와중에 단지 13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대한제국, 그 황실 일가의 비극적 연대기와 가족사가 네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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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 마지막 황태자 4
작가의 말
화려한 약혼시절
아름다운 봄날의 결혼
조선 민중의 매서운 반발
아기 전하의 이름은 ‘진晋’
3인의 조선행
숭인원의 깊은 슬픔
조선의 어린 왕공족들이 가는 길
관동대진재와 왕족의 천막 살이
순종의 쓸쓸한 승하
대망의 유럽 여행
무엇이 덕혜옹주를 미치게 했나
추녀의 깊은 정
혼혈결혼을 거부하다
이구 왕세자 태어나다
마지막 평화
전쟁의 세월 시작되다
다가오는 멸망의 시간
이우 공의 아까운 죽음
일본의 항복과 이은의 황망한 처신
누드화를 그리는 이은 전하
‘신적강하’로 평민이 되다
한국 정부와의 갈등
이구의 도미와 이은의 일본 귀화
고독과 고통과 가난의 나날
따뜻한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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