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대의 생초보 의사가 본 리얼한 시골의 삶!
권태로 시작한 생비량면 관찰기를 담은 초보의사 양성관의 에세이『생초보 의사의 생비량 이야기』.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건지소 의사로 군복무를 하게 된 저자가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보건지소에서 1년간 생활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다. 매일 보는 사람, 매일 보는 질병,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과 권태 속에서 선택한 극단적인 선택. 그것은 바로 관찰이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아픈 사람이 오면 증상을 듣고 자동적으로 차트를 쓰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직접 시골의 현실과 마주하며 환자들의 삶이 아닌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마부터 국제결혼이민자, 귀농인,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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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풋내기 의사, 풋풋하지 않은 시골과 만나다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보곤 하는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과연 꿈꾸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 어느 날 갑자기 외딴 산골 마을에서 생활하게 된 20대 청년이 있다. 그것도 마을 주민 1,300명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지소 의사로. 보건지소에 도착하기 전에는 누구나 그렇듯 푸근한 미소와 삶의 여유가 묻어나는 넉넉한 시골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발령 첫날부터 환상은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실제로 본 시골의 환경은 열악했고 고달팠다.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으며, 허리가 심하게 굽어 허리를 손으로 두드리는 모습이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p7) 또한 할머니들은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렸다.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허리고 다리고 안 아픈 데가 없으며 등이 심하게 굽은 할머니들은 버스에 오를 때면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지만, TV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p190)
게다가 매일 밤이면 인기척마저 사라져버리는 한적한 산골 마을은 그곳에서 홀로 잠들어야 하는 청춘을 참을 수 없는 고독으로 몸부림치게 했다. “밤이 되면 혼자 지내야 한다. 사람이 그리워 길로 나가보지만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가로등과 집에서 새 나오는 빛이 길 위에 있는 전부이다. 그 빛도 얼마 못 가서 길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보건지소로 돌아간다. 점심때 남은 밥과 반찬으로 저녁을 때운다. 저녁에 혼자서 밥을 먹을 땐 TV를 켜서 억지로 사람 소리를 퍼뜨린다. 가끔 TV 프로그램이 재미있을 때가 있다. 혼자 웃는다. 웃다 보면 어느 순간 텅 빈 공간을 울리는 웃음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그러면 왠지 혼자 웃고 있는 내가 궁상맞게 느껴져 웃음을 멈춘다” (p113-114)
단순히 인구 구성비로만 봤을 때 시골에 사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이는 그 자체로 마이너리티, 즉 비정상이 된다. 그 마이너리티로서의 삶이란 참을 수 없는 권태와 싸우는 것이었다.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극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 1,300명이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살아오고 있는 생비량에 변화가 있을 리 만무했고, 당연히 자극될 만한 것도 없었다. 나는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고, 경제학 공부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낚시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새를 관찰하고, 수백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라면 봉지 뒤의 설명서까지 꼼꼼히 읽었으며 산청군 전화번호부를 완독하였다.” (p5)
외딴 산골 마을에서 홀로 지내며 나날이 늘어져 가는 몸과 밀려드는 권태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결국 그는 권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고는 관찰을 시도했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마을과 사람들 그 생생한 삶의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꿈과 환상만이 존재하는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보다 현실적인 시골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미 시골은 우리 곁에 항상 머물러 있는 현재 진행형도 미래형도 아닌, 조만간 사라지게 될 과거형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느리게 걷는 사람들, 이 산골 마을이 살아가는 법
한 학년 전교생이 한 명뿐이라 언제나 전교 1등인 초등학생,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아가씨, 한국전쟁 때 마을까지 내려온 빨치산과 전투를 벌였다는 할아버지, 등에 커다란 용 문신을 새긴 채 농사를 짓는 40대 청년, 술에 취할 때만 보건지소에 와서 허리가 아프다며 약을 타가는 아저씨, 3년 전 귀농을 해서 이제는 완벽한 시골 아낙이 다 된 아주머니, 설이 끝난 날 고향을 그리워하며 우는 할머니, 80이 넘었는데도 쓸 일이 있다며 비아그라를 찾는 할아버지 등등……. 이곳 생비량면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로 미루어 베트남출신으로 생각되었다. 꽤 예쁜 편이었고, 남편으로 보이는 40대 남성은 옷차림으로 보아 농사를 짓는 농촌 남성으로 생각되었다.……여자분을 주사실로 내보내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아들이래요, 딸이래요?’ ‘딸이래.’ ‘축하드려요. 딸이 어머니 닮으면 예쁘겠네요.’ 그러자 할머니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식이 에미를 닮으면 안 되는데…….’” (p250-251)
“할머니는 어쩌다 산청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는데, 바다가 펼쳐진 고성과는 반대로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시집온 첫날부터 숨 막히게 갑갑했단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밤이면 밤마다 고향이 그리워서 남편, 자식 몰래 홀로 눈물을 삼키며 잠들었다고 했다. ‘그러면 고향에 한 번 가보시죠.’라고 내가 말하니, 할머니는 고향에 가니 집은 없어져버린 지 오래고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서순자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찾아갈 고향도 없는 것이다.” (p256)
국제결혼이주여성 그리고 혼자 살아야 하는 할머니, 그들은 고독했고 미래는 불안정했다. 분명 인정 넘치고 사람 냄새가 나는 시골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 속에는 끝내 떨칠 수 없는 불안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것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불안감이었다.
한편 저자는 시골과 도시의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흥미롭게 비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르신들이 많은 시골에서 특히 유용한 다양한 삶의 이기(利器)인 유모차를 개조한 실버카는 할머니들의 약한 다리를 지탱해주고 짐도 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전기의 힘으로 가는 전동휠체어와 시골 지형에 강한 사륜 오토바이도 유용하다. 그러나 여전히 시골에서 이동하기란 쉽지 않다. 차로 15분 거리를 가기 위해 하루 다섯 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야 하며, 10분 거리를 가기 위해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비싼 요금을 내고 타야 한다. “도시에서는 흔한 대중교통 수단을 시골에서는 거의 이용할 수가 없다. 생비량에서 마트가 있는 옆 동네 원지에 가려고 한다고 가정하자. 생비량에서 원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5대뿐이다. 버스 타고 가서 장 보고, 버스 오길 기다렸다가 다시 타고 돌아오면 반나절이 지나간다. 버스가 2~3시간마다 한 대씩 있는데 막상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은 15분 정도이다.” (p185) 느리게 걸으며 삶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시골에서 몸이 자주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 들에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 20대 의사의 특별한 시골 이야기
의대를 갓 졸업해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건지소 의사로 군복무를 하게 된 저자가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보건지소에서 1년간 생활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묶은 이 책은, 우울한 내용임에도 좀 더 리얼한 현실 속 시골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곳곳에서 웃음을 자극한다. 밤늦게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상점을 헤매고 다니기도 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콜라를 사 마시기도 한다. 또 점심시간 보건지소를 찾아오는 마을 주민에게 의사로서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를 묻힌 채 요리하는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으려는 섬세함도 보인다.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있어 그가 마을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지소 의사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마부터 국제결혼이민자, 귀농인,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왕진 겸 약 배달을 나가기도 했으며, 가을에는 감을 따러 다니며 마을 사람들의 삶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본 실상은 달랐다.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은 웃는 날보다 얼굴을 찡그린 날이 더 많았다. 넉넉하고 풍요롭게 베풀기보다는 가난하고 궁핍했다. 걸을 때마다 무릎이 삐걱거리며 통증 때문에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할아버지는 논에 농약을 뿌리러 가야 했고, 할머니는 산에 고사리를 캐러가야 했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기보다는 지렁이 같은 주름이 이마 가득 걸려 있었다.……나는 관찰한 것들을 글로 썼다.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동적인 낭만보다는 현실적인 모습에 대해. 환자들의 삶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 시골에서의 삶을 말이다. 할머니들의 넉넉한 웃음보다는 밭에서 일하다 아픈 허리를 펼 때 통증으로 찌푸려지는 얼굴을 담아내려 했다.” (p7-8)
시골에서의 삶은 권태로웠지만 책은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더 솔직한 산골 마을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여유를 잃지 않는 자세보다는 유머를 잃지 않는 자세로 보인다. 그의 심드렁하지만 날카로운, 우울하지만 유쾌한 시골 체험기를 통해 시골 마을의 구수한 사람 냄새를 느끼면서 시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고단한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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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1장 산골 마을 스물일곱 살
삶의 체험현장, 보건지소
그리고 나는 비정상이다
첫날밤
생비량의 뫼르소
possible or impossible
하루 시간표 (상)
하루 시간표 (하)
구판장의 법칙
와인 콜라
책과 술 그리고 전기장판
2장 생비량에 살으리랏다
첫인사
전교 1등, 내 친구 민규
밤 이야기
용의 결혼
블랙리스트
융단폭격
한국 3대 명절
설 before & after
내가 만든 농촌 드라마
겨울밤
3장 내겐 너무 아픈 당신
명백한 오진
1,400원과 400만원
국제 유가 상승이 생비량면의 감기 환자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짧은 보고서
보건지소를 찾는 사람들
두 줄기 흐르는 피
스님 의사
전쟁의 서막
이기적인 의사
환자가 두렵다
의사도 먹어야 산다
4장 별빛 부자 마을이 만난 도시
시골여자, 서울여자
할머니의 어플
시골의 봄은 농부의 신발에서 온다
무림 혈전
촌의 교통수단
촌의 필수품
땅 부자라 슬픈 이들
세습되는 직업
광란의 댄스파티
촌의 여가생활
5장 천천히 걷는 사람들
귀농 부인
책 속에 묘사된 귀농
귀농 심도 분석
문명의 척도
프랑스 폭동과 한국의 다문화 가정
엄마를 닮으면 안 되는 자식
설이 끝난 날 고향을 그리워하다
쏘장님
일요일 새벽 응급 상황
전국 여행을 떠난 할아버지
멀어져가는 목소리
마지막 소원
빨간 설렘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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