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적인 도시들을 통해 살펴보는 인류의 역사!
도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도시는 문명의 중심이자 사상의 본원이었고, 인류 역사의 동력원이었다.『세상의 도시』는 150여 개의 지도와 그림으로 위대한 도시들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64개 도시에서 펼쳐진 인류의 역사를 아름다운 옛 지도와 파노라마 그림을 곁들여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전설로만 남은 도시 테오티우아칸에서 시작해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로마, 파리, 런던, 델리, 그리고 근대에 건설된 신대륙 도시들까지 살펴보고 있다. 오랫동안 지도 전문가로 활동해온 저자는 150여 장의 그림과 지도를 골라 도시들이 어떻게 구획되었고, 그 건축 형태와 사회 양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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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최초의 도시는 어디에 세워졌을까?
▶ 대지진과 화재, 흑사병은 도시인의 삶에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 알렉산드리아, 런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워싱턴을 구상한 사람은 누구일까?
▶ 최초의 고층주택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 사라진 도시 테오티우아칸과 구현되지 못한 이상적 도시 아질리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거 업적의 강렬함과 영향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는 면에서 도시는 거대한 극장과도 같다. 옥스퍼드와 리우데자네이루가 다르고, 보스턴과 라사가 다르다. 그래서 다른 도시를 찾아갈 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 도시마다 다른 정서를 경험하면서 그 안에 들어선 우리의 사유도 달라진다. 우리는 도시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대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머 리말 중에서
사라진 도시에서 세워지지 못한 이상 도시까지, 수천 년 역사를 아우르는 인류와 도시의 대서사시!
약 60여 개 도시의 역사적 지도를 담아낸 이 컬렉션에서 걸출한 역사가이자 지도학자인 윗필드는 도시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 길버트 테일러Gilbert Taylor,
도시 역사는 모순투성이 인간의 역사 그 자체다. 한편으론 문명의 중심이자 사상과 예술의 본원이요 인류 역사의 동력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무차별적인 살상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들끓고 인간의 순수한 이상을 좌절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세월 동안 부와 권력을 좇는 사람들, 새로운 정체성과 탁월한 업적에 욕심내는 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현재. 로마에 대해 “이곳 거리에 굴러다니는 돌과 태양의 파편에 역사가 어려 있다.”고 썼던 헨리 제임스처럼, 도시를 채우고 있는 역사의 숨결과 마법 같은 이야기를 찾아 전세계 관광객들은 파리와 피렌체, 예루살렘, 상트페테르부르크, 런던으로 몰려간다.
아름다운 지도로 담아낸 위대한 도시들의 정수
이 책 《세상의 도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인류 역사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오래 전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은 도시 테오티우아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고대의 숨결을 간직한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콘스탄티노플과 수백 년 넘게 화려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로마, 파리, 런던, 델리 등을 거쳐 근대에 건설된 신대륙 도시들까지……. 저자인 피터 윗필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64개 도시를 무대로 펼쳐진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아름다운 옛 지도와 파노라마 그림들을 곁들이며 유장하고 흥미진진하게 설명해낸다.
“지도에는 도시의 역사와 혼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지도 전문가로 활동하며 역사학 계통에서 독특한 입지를 다졌다. 그가 골라 실은 150여 장의 그림과 지도는 전통적인 도시 국가, 중세의 요새 도시, 바로크 양식의 수도, 산업화된 메트로폴리스들이 어떻게 구획되었는지 그리고 건축 형태와 사회 양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이 도시들의 형태를 결정짓는 건축물이나 지리적 환경만이 아니었다. 피터 윗필드는 도시의 정신 즉 내면적 개성과 특질을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책 속에 각 도시의 종교 · 정치 · 상업 · 사회 목표 그리고 예술적 이상과 좌절 등을 다양한 색채와 이야기로 응축해냈다.
도시의 태동
위대한 도시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 기원은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동지방에서 농경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정착해 지내며 잉여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인류에게 단순한 생존 이상의 가능성을 선사했다. 점점 팽창한 촌락은 정치권력이 작용해 도시가 되었다. 정치력과 기술력이 하나로 응축된 도시는 마치 자석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부와 지위, 학문과 예술을 찾아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도시 구조는 점점 복잡해졌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발달했고, 도시국가 폴리스(polis)의 전형을 이룬 아테네 역시 그랬다.
특히 아테네는 그 이전까지의 도시들보다 훨씬 급진적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수많은 철학자들이 배출되고 시민들은 고결한 이상향을 추구했던 고대 아테네를 황금시대를 일궈낸 도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성장해나갔던 아테네는 그다지 멋진 외관을 갖춘 도시는 아니었다. 혼잡하고 불결해, 기원전 300년 전 한 작가가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그토록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가 바로 그곳이란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묘사했을 정도다.
군주, 도시를 디자인하다
반면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새롭게 세워진 도시들에는 뚜렷한 계획과 일정한 건설 패턴이 존재했다. 도시는 통치 왕조의 권력 전시장으로 변모해 온갖 기념비적 건물들로 장식됐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였다. 건축가 디노크라테스는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직접 세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도시를 건설하라는 명을 받고 파로스 반도를 찾았다. 도시의 동서를 잇는 대로가 닦이고, 바다쪽 길에는 이집트 풍 오벨리스크가 두 개나 세워졌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거대한 등대와 온갖 사상과 학문의 산실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들어섰다. 정작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수도를 살아생전 보지 못했지만.
중세 내내 이어진 종교전쟁으로 피폐해졌던 유럽 도시들은 17세기 무렵 도시 주변에 요새를 세우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과정을 거쳤다. 이 시기 도시를 수놓은 바로크 양식은 정치적 전제주의를 표현하는 도구나 다름없었다. 파리 빈 베를린 포츠담 마드리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도시들은 왕족의 명성을 상징하는 화려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도시 전체가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팔마노바와 독일 로코코 스타일 건축의 최고 권위자인 발타자르 노이만이 수십 년에 걸쳐 디자인한 카를스루에는 계획도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경제와 종교, 도시를 바꾸다
도시는 전제군주의 의지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업적 동인이나 계획적 이주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 유럽 열강들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시절, 브리스틀·리스본·리버풀·암스테르담 등 항구도시들은 해상무역의 상승과 하락에 따라 도시의 흥망성쇠를 달리했다. 삼각무역으로 짭짤하게 재미를 보던 브리스틀은 무역 중심지가 리버풀로 옮겨가자 새로운 부두를 건설하고, 강줄기의 방향까지 바꾸어가며 일정한 수심을 유지하는 항구를 마련할 정도였다. 부동산 붐을 타고 정신없는 속도로 발전한 시카고는 1893년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를 계기로 미국 경제에서 무시 못할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신대륙 도시들은 주로 유럽 이주민들에 의해 건설됐다. 시드니가 개척된 건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영국의 태평양 거점을 설립해보자던 박물학자 조지프 뱅크스의 제안 때문이었다. 1788년 1월, 11대의 영국 선박이 실어온 700명의 죄수들은 질병과 식량 부족, 호전적인 원주민 등의 악조건을 이겨내고 도시의 토대를 닦았다.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던 찰스 다윈은 시드니를 보고 “지구 한쪽 반구에서 가장 쓸모없던 부랑자들을 다른 반구에 사는 능동적인 시민으로 변화시켜 훌륭한 신생국가를 탄생시키고 문명의 중심지가 되도록 했다.”며 감탄했다. 한편 미국의 필라델피아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퀘이커교도들이, 솔트레이크시티는 모르몬교도들이 뿌리를 내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싹틔워나갔다. 그들의 종교적 이상은 물리적 형태로도 드러났는데, 엄격하리만치 일정하고 규칙적인 도시 구획은 신의 질서를 지상에 구현하려는 의지에 다름아니었다.
무너진 도시들
도시의 운명은 그곳을 다스린 왕조, 당시의 정세나 전쟁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대지진·흑사병·화재 등의 재해는 도시를 완전히 초토화시킬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문명의 위용은 단 한순간의 지진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렸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당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만 명이 사망했고, 1884년의 나폴리에서는 콜레라가 유행해 하룻밤에 1,000명씩 죽어나갔다. 골드러시 시대에 거침없이 성장해나가던 샌프란시스코는 1906년 대지진과 화재를 동시에 겪었는데 1,000여 명의 인명피해가 나고 수만 명이 집을 잃은 채 공원에서 노숙을 했다. 신대륙 특유의 투지와 낙천성으로 도시 재건에 나서, 단 몇 년 만에 재난의 흔적을 깨끗이 지웠지만 지질학자들은 캘리포니아 해안가 전역이 두 개의 거대한 판구조로 이루어진 단층선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후로 샌프란시스코는 언제 또 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도시가 되었다. 가장 끔찍한 상흔은 런던에 남았다. 1665년 창궐한 흑사병은 10만 명의 런던 시민을 죽음을 이르게 했고, 다음해 일어난 대화재는 도시의 85퍼센트를 파괴했다.
이성의 힘이 강력하게 발현된 문명의 터전일수록 재해 앞에서 더욱 속수무책으로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반복되고 있다. 저자 역시 도시민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지적한다. “현대 도시는 거대하고 박력 넘치며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불멸의 존재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그 거주민들은 외부 적의 공격에 대책 없이 취약하고, 생업의 안정성 역시 마찬가지다.”
사상과 예술을 꽃피우다
이렇듯 도시의 삶은 건설과 파괴, 탐욕과 좌절이라는 부조리로 점철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창조적 에너지가 끊임없이 분출되는 공간이었다. 종교전쟁이 쉴새없이 반복되고 시민들은 숨죽인 채 살아야 했던 중세 암흑으로부터 화려한 르네상스가 싹튼 것처럼.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코뮌 대참사 이후 파리에는 에펠탑이 들어서고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 불리는 시기를 활짝 열었고, 19세기 후반 전쟁에서 패해 독일어 사용권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프로이센에게 넘겨준 오스트리아에서는 슈트라우스와 브람스, 클림트와 실레가 등장해 예술도시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학문과 사상의 기초 역시 인간 가능성의 최대치를 담는 그릇이자 자석이요 만남의 광장인 도시에서 닦였다. 아테네에 설립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라이시움과 같은 철학학원들은 도시가 쇠락하여 폐허가 된 뒤에도 진정한 아테네의 유산을 구현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 같은 전설적인 과학자들이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뉴턴, 비트겐슈타인, 케인스와 같은 학자들이 학문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곳은 학구열로 뜨거웠던 도시 케임브리지였다. 산업혁명의 그늘 아래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도한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만난 영혼의 동지 엥겔스와 함께《공산당선언》이라는 불세출의 저작을 완성했다.
도시의 역사와 미래를 여행하는 즐거움
도시에서 인류는 문명을 활짝 꽃피우는 동시에 잔인한 인신공희의 축제를 벌이기도 했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끝없는 성찰로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면서도 탐욕과 불신으로 얼룩진 파괴의 역사를 직조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테네에서 브라질리아로, 워싱턴에서 모스크바로, 런던에서 사이공으로 여행하다보면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유산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잡하고 불가해한 골칫거리인 도시와 인간의 애증 어린 관계를 흥미롭게 탐색할 수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모두 도시인이다. 《세상의 도시》를 펼친 독자들은 도시의 까마득한 역사뿐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재와 미래가 변모하는 모습을 그려보며, 새롭고 다채로운 지적 유희를 맛보게 된다.
보스턴Boston
청교도적 고립 정책은 보스턴의 부를 가능케 한 경제적 개방정책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독립정신은 정치 영역으로 전승되어 보스턴은 영국 런던의 거만한 지배에 대한 저항의 본거지이자 미국 혁명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1770년의 보스턴 학살, 보스턴 차 사건, 폴리비어의 파발, 벙커힐 전투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보스턴을 무대로 일어났고 그 내용은 미국의 탄생이라는 대서사시에 기록되었다. ―본문 55쪽
케이프타운Cape Town
케이프타운에 유럽인들이 정주定住하기 시작한 것은 1652년의 일로 그 주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얀 반 리베크가 인도로 왕래하는 자회사 선박의 중간 공급기지 건설 사명을 받고 약 1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케이프타운에 온 것이다. 이들은 원주민의 격렬한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완수해냈다. 채 2년이 지나기도 전에 과일과 야채가 경작되고 산비탈에는 포도밭이 만들어졌다. 딱 4년이 지난 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직원들을 자유롭게 살도록 해주었고, 그들은 지역 주민이나 농부가 되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케이프타운은 자치 식민지로 자리잡았다. ―본문 67쪽.
시카고Chicago
이 도시가 미국 경제의 거인이라는 위상을 확실하게 확보했음을 상징하는 사건도 있었다. 1893년 시카고에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시카고는 워싱턴이나 뉴욕보다 더 비싼 참가비를 제시했다. 박람회는 대규모로 기획되었다. 시카고 남부지역 중 550에이커에 달하는 토지 위에 전시장이 될 거대한 ‘백색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4만 명을 고용했고 거의 2년 동안 공사를 했다. 전시관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로 인해 새로운 건축 기법을 선보일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는 평론가들도 있었다. 박람회가 열리는 6개월 동안 2,6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였다. ―본문 71쪽.
쿠스코Cuzco
1650년에 발생한 극심한 지진 이후 도시 대부분을 재건축하고 장식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결합된 ‘쿠스코 양식’이 등장했다. 쿠스코는 페루의 두 번째 도시라는 지위를 단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 그러던 1911년, 쿠스코가 새롭게 주목받는 전기가 찾아왔다. 탐험가 하이럼 빙엄이 마추픽추라는 잉카 제국의 독특한 거주지를 발견해낸 것이다.
―본문 79쪽.
피렌체Florence
피렌체는 연속성 있는 과거나 몇 세기 동안의 영광스러운 역사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80년 혹은 90년 간 이 도시에서만 분출됐던 창조적 에너지로 설명해야 한다. 르네상스의 모든 역사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전부 설명해낼 수는 없다. 전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별로 특별할 것도 없던 로마의 한 도시가 여러 세기 동안의 숨죽임을 깨고 자신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중세에 드러내보인 것이다. ―본문 89쪽.
예루살렘Jerusalem
예루살렘의 근대사는 1917년부터 시작되었다. 시오니즘(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복귀시키려는 민족 운동.─역주)과 이스라엘 국가의 성립으로 새로운 근대사가 형성되어갔다. 하지만 예루살렘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증오와 유혈 참사는 과거의 종교적 비전에 의해 해방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종교의 덫에 갇혀 있다고 봐야 한다. 오늘도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분쟁은 이러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준다. ―본문 99쪽.
라사Lhasa
베일이 벗겨진 라사는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펴낸 책이 난무하고, 역사상 최초로 라사의 전경을 찍은 사진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신화 속의 도시를 직접 목도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환멸감을 이야기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토록 눈부셨던 도시의 실체는 불결하기 그지없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거리는 웅덩이 천지에다 여기저기 개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어둠침침한 건물은 악취를 풍겼다. 사람들은 음산한 표정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본문 103쪽.
런던London
런던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꼽는다면 1665년에 창궐해 무려 10만 명의 런던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흑사병과 다음해에 일어난 대화재였다. 런던 대화재로 인해 도시의 85퍼센트가 파괴되었고 인근 지역까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화재의 영향은 미미했다. 크리스토퍼 렌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이 대단한 규모의 기발한 도시계획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계획이 변경된 것은 없었다. ―본문 113쪽.
뉴욕New York
유럽에서 온 수백만의 이민자들에게 뉴욕은 미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곧바로 뉴욕에 정착하여 새로운 산업에 종사했다. 이민자들이 커다란 부락을 이루며 맨해튼 동부와 서부지역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하지만 뉴욕의 심장부는 항상 맨해튼 반도였다. 허드슨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맨해튼을 페테르 미누이트가 25달러에 매입했던 일은 역사에 기록될 최고의 거래로 길이 남을 것이다. ―본문 143쪽.
파리Paris
에펠탑이 들어서고, 인상주의학파들이 활동하며,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는 파리는 벨에포크La 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 1871~1914년까지 서유럽이 평화 · 번영을 누렸던 시기.─역주)를 환기시키는 온갖 상징물을 갖게 되었다. 파리라는 도시를 세운 이들은 항상 웅대함을 추구했고, 그들이 남긴 기념비적 건축물로 인해 현재 우리는 파리라는 독특한 도시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역사 내내 반복해서 폭발과 파괴를 경험해야만 했던 어두운 면이 감춰져 있기도 하다.
―본문 153쪽.
로마Rome
1870년 이후 도시 인구는 크게 늘어났고, 로마는 행정의 중심이자 관광사업의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 기반은 취약하다. 사람들을 로마로 이끌어내는 것은 아직도 로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다. 유럽의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기여를 한 도시이며, 황제와 교황이 다스렸던 도시이고, 예술가들의 영화가 존재했던 곳이며, 적국의 증오를 샀던 장소라는 생각들……. ―본문 169쪽.
빈Vienna
슈트라우스와 브람스로 인해 음악 도시로서 전성기가 시작되고, 그 뒤를 브루크너Bruckner와 말러Mahler가 이어갔다.
연극에서는 슈니츨러Schnitzler와 호프만스탈Hofmannsthal이, 회화 분야에서는 클림트와 실레가 활약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프로이트가 있었다. 하지만 때늦은 지혜로 생각해보니 프로이트 이론에 대해 중대한 의문 하나가 생긴다. 그의 이론이 정말 인간성의 영구적 특성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면 세기말 빈의 비정상적인 심리상태를 반영한 데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본문 203쪽.
워싱턴Washington
본격적인 착공은 1792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랑팡은 수도 건설공사를 감독하는 장관들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해고를 당한 랑팡은 수고비로 지급된 금화 500기니를 경멸하며 거절했다. 랑팡은 자신의 기념비적 도시계획안에 대한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한 셈이다.
랑팡의 뒤를 이은 도시계획가는 앤드루 엘리콧Andrew Ellicott이었다. 랑팡은 자신의 계획안이 ‘엉망으로 망쳐지고 마구잡이로 바뀌었다’고 격노했지만, 사실상 워싱턴은 전체적으로 그의 계획안과 흡사한 모습을 하게 되었다. 다만 공사 진행이 늦어졌을 뿐이었다. ―본문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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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머리말
서문 : 역사 속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 사라진 도시
알렉산드리아
암스테르담
아테네
배스
베이징
베를린
베른과 취리히
보스턴
브리스틀
칼레
케임브리지
케이프타운
시카고
쾰른
콘스탄티노플
쿠스코
델리
더럼
에든버러
피렌체
고아
헬싱괴르
이스파한
예루살렘
카를스루에
라사
리스본
리버풀
런던
룩셈부르크
맨체스터
만토바
마르세유
멕시코시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나가사키
나폴리
뉴옥
옥스퍼드
팔마노바
파리
필라델피아
퀘벡과 뉴올리언스
리우데자네이루와 브라질리아
로마
사이공(호치민시티)
세인트앤드루스
솔트레이크시티
잘츠부르크
샌프란시스코
산토도밍고
서배너
세비야
스톡홀름
시드니
탕헤르
베네치아
빈
워싱턴
뷔르츠부르크
아질리아와 태양의 도시
건설하지 못한 꿈의 도시
참고문헌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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