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을쑤니가 사는 법』은 3년 가까이 에 쓰고 있는 칼럼 ‘삶의 향기’와 웹진 ‘온라인이프’에 연재했던 ‘을쑤니가 사는 법’의 글들을 함께 엮은 에세이다. 개인과 가정사, 여성운동가로서 현안에 대한 쓴 소리, 동료와 친구와 여가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2000년 ‘FLOWERS’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사진 작품들을 글 사이사이에 함께 수록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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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환갑을 바라보는 현역 여성운동가의 탱탱 말랑한 자전적 수필과 칼럼 모음. 한 가정의 딸이자 한 남자의 아내, 두 딸의 어머니로서, 누군가의 친구나 동료로서, 여성운동 단체의 대표로서 겪는 일상사와 사회 현안에 대해 일간지와 온라인 매체에 발표한 글들 중 57편을 추려 개인과 가정사(제1부 ‘내 이름은 을쑤니’), 여성운동가로서 현안에 대한 쓴소리(제2부 ‘을쑤니가 간다’), 동료와 친구와 여가 이야기(제3부 ‘을쑤나 놀~자~’)로 분류했다.
지은이는 서울에서 여자중고등학교와 여대를 졸업하고 결혼해 ‘평범한’ 미국 유학생 가정의 전업주부로 살다가 귀국했다. 늦깎이로 다시 전문대학에 들어가 사진을 전공하고 일거리를 늘려 나가던 중 ‘우연한, 그러나 예정된’ 계기를 만나 여성운동 단체에 합류했다. 따뜻하고 익살맞으면서도 날카로운 글들은 읽은이로 하여금 공감하며 빠져들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덩달아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가 하면, 포복절도하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군데군데 끼워넣은 사진들은 지은이의 첫 사진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것들로, 본문과 별도로 오려내 간직하고 싶게도 한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에는 딸로서의 그녀, 엄마로서의 그녀, 아내로서의 그녀, 친구로서의 그녀, 사회의 어른으로서의 그녀, 여성운동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그녀 등 엄을순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정체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금언을 저절로 깨달을 정도로 그녀는 철두철미 태생적인 페미니스트이다.”
_추천의 글(유숙열, (사)문화미래이프 공동대표, 전 언론인)
“미스코리아 대회를 반대할 때도 축제를 열고 춤추며 했듯이, 잘못된 사회 부조리와 대항할 때도 뒤집어지게 웃고 놀면서 하고 싶다. 친구들은 나의 이 방법을 ‘을쑤니표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_프롤로그
“엄을순이 얼마나 발랄하고 유쾌한 사람인지, 그 매력에 매혹되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다. 그의 재치 넘치는 글솜씨로 다시 황홀을 경험한다. 즐거운 일이다. 탱탱하고 말랑말랑한 여자 을쑤니의 익살과 재치, 그리고 진정에 만세!”
_추천의 글(이경자, 소설가)
책속으로 추가
병원 인근에서부터 차가 밀리더니 30분 이상을 지체하다가 드디어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4층까지 차들이 줄줄이 밀려서 빈자리를 찾아 빙글빙글 도는데 갑자기 앞에서 어떤 남자가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쳤다.
“야, 일방통행인데 들어오면 어떻게 해!”
“뒤 좀 보세요. 원하지 않아도 계속 밀려오네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리세요. 빼줄게요.”
“에이 썅, 운전도 못하는 저런 년들이 다 차를 갖고 나오니까 이렇게 밀리지. 18.”
“당신이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에요?”
“빨리 빼, 이년아. 보X를 그냥 확…….”
순간 확 머리가 돌았다. ‘참아야 하느니라’ 하고 심호흡까지 했건만 이미 내 몸과 입은 ‘타고난 성깔’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야 새캬, 어따 대고 쌍욕이야? 니 눈엔 아줌마들이 다 생식기로 보이냐? 이 자X 같은 새캬. 18넘.”
“빨리 빼, 18년아. 확 박아 버릴까 부다. 기집년이…….”
“기집년이 어째서? 너 여자에 콤플렉스 있냐? 너 같은 놈 때문에 내가 조신하게 살 수가 없어, 이 18넘아.”
“빨리 차 빼, 이년아! 옆구리를 확 박기 전에.”
“잘됐다, 새캬. 차가 좀 지저분했는데 니 덕에 좀 공짜로 고쳐 보자. 나 오늘 맘잡고 니 버릇 좀 고쳐 볼란다. 서로 비슷하게 나이도 먹었는데 어따 대고 보X질이야? 니 눈엔 여자는 다 구멍으로만 보이냐? 시간 없어, 새캬. 차나 빨리 박어.”
[…]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욕을 다 뱉어 내고, 내가 들은 욕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놈의 태도가 바뀌는 게 확연히 보였다.
“빨리 차 빼요, 나가게.”
세상에! 말투에서 욕이 쏘옥 빠지더니 심지어 사정하는 듯한 꼴이라니…….
자연스레 나도 욕질이 끝났다.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니 주차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내게 사정을 하고 있다. 이해하시고 차 좀 얼른 움직여 달란다.
그가 뭔 죄가 있겠는가. 시동을 걸어 욕질한 놈이 나간 자리에 차를 세우고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속이 시원해졌다. 그놈에게 당한 게 아니라 물리쳤으니까.
_나는야 타고난 싸움닭(121-123쪽)
원래 화장을 못하기도 하고 또 안 하기도 하는 난 정말로 평범하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수수한 모습이 어필했는지 계속 ‘통과, 통과’ 하더니 급기야 최종심까지 갔다.
마지막 네 명. 원래는 세 명을 뽑는데 동점이 있어 네 명이 올라왔다. 메이퀸이 결정되는 마지막 관문이다. 무대 위에 선 나는 관중석을 주욱 둘러보고 심사위원석을 향했다.
[…]
“4번 엄을순 씨께 묻습니다. 메이퀸 선발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개인적으로, 이런 선발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팔다리를 내놓는 옷을 입고 이쪽저쪽 사방으로 돌아가며 몸을 보여야 뽑히는 것이라면 전 사양하고 싶습니다. 사실 최종까지 올라오지 못할 줄 알고 있었는데 운이 여기까지는 닿은 모양이네요. 전 여기까지로 만족하고, 만약 된다면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지적인 대답,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명쾌한 응수.
그리고 나는 거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다. 이유는 뻔하다. 조건이 모자랐거나, 뽑혀도 거절하겠다는 사람을 굳이 뽑을 이유가 없었거나. 하여간 최종 선발된 메이퀸을 뺀 나머지 세 명은 다들 자기가 2위였을 거라고 우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같이.
그때도 메이퀸 선발을 두고 성을 상품화하는 행위라며 말들이 많았다. 학교를 대표할 아름다운 사람을 뽑는데 꼭 그런 방식을 써야 하는지 말이다. 그 다음해엔 나와 같은 생각이 많이 확산되어 49개 학과 중 24개 학과가 거부했고, 결국 메이퀸 선발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_“메이퀸이 돼도 거절하겠습니다”(135-136쪽)
난 의사도 법률가도 아니고, 낙태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늘 하던 대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한다.
첫째, 벌을 주려면 남자를 벌줘라.
임신과 낙태엔 반드시 원인 제공자가 있고 처벌을 한다면 둘 다 받아야 맞다. 죄질로 말하자면 감당치 못할 임신을 시킨 원인 제공자가 더 고약하지 않은가.
[…]
둘째, 여성의 몸을 정부 정책에 이용하지 마라.
만약 낙태 금지가 여자들의 건강이 걱정돼서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으로 벌이는 일이라면 곤란하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인구 조절(당시는 감소) 목적으로 보건소에서도 낙태를 해줬다. 자기들 맘대로 낙태를 해주더니 이번엔 낙태했다고 감옥에 가둔다니, 정부는 인구 조절을 여자의 몸을 통해 하겠다는 얘긴가?
[…]
셋째, 성교육과 복지정책부터 완비해라.
낙태를 막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남자들에게 적극적이고 완벽한 피임법을 교육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들도 어린 학생 때부터 철저한 성교육을 시켜서,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설사 낳더라도 혼자 애 키우며 먹고살 수 있도록 복지정책과 사회의 포용력도 준비돼야 한다. 그게 다 갖춰진 후에 낙태 처벌을 강화하는 게 바른 순서다. 정책을 이제 준비하기 시작해서야, 당장 낙태 못해 쏟아져 나올 미혼모들을 어찌 다 감당하려는가?
_낙태, 남자를 벌줘라(161-163쪽)
‘양평 땅 거저 드립니다.’
플래카드에 눈이 번쩍! 전화번호를 적어 뒀다가 다음날 통화를 했다.
“빨리 오세요. 낼 누가 계약한다고 하시니 오늘 오셔서 보시고 오늘까지 결정해야 합니다.”
난 이런 말에 약하다. 당장 양평으로 달려갔다. 땅을 ‘거저’ 준다는데 무조건 달려가야지.
양평 시내에서 한참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이 내게 보여 준 땅. 들어가는 진입로가 없어서 밟아 볼 수 없는 ‘맹지’란다. 맹지라니 무슨 말인지 그때는 알지도 못했고, 진입로가 없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지도 알지 못했다.
“저~기 실개천 너머, 왼쪽 자줏빛 꽃이 있는 데부터 오른쪽 노란 애기똥풀 있는 데까지.”
그들이 내게 설명해 준 땅의 경계다. 얼마나 정감 있는 설명인가! 당장은 남의 땅을 통과해야 하고 실개천을 건너게 다리도 놓아야 하지만, 다 해놓고 나면 양평의 무릉도원이 될 거란다. 다리 놓는 허가에 필요한 서류는 물론 다 도와주고, 땅값도 근처 땅의 20퍼센트밖에 안 된다는데.
[…]
계약을 끝내고 며칠 있다가 남편을 데리고 내가 산 땅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큰일났다! 내 땅을 찾을 길이 없다. 경계에 피어 있던 자줏빛 꽃들과 노란 애기똥풀이 그새 져버렸나 보다.
“어디야, 우리 땅이?”
“글쎄, 큰일이네……. 꽃이 다 져버렸네.”
_을쑨네 ‘평화 주막’(289-290쪽)
내가 강북 좌파도 아니고 강북 ‘우파’를 자처하는 이유는,
평생 그리 발랄한 연애질을 해보지 못했기에 연애관은 보수적임이 확실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 ‘이프’가 본의 아니게 ‘친 기업적’이라 그렇다.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의 구별은 당의 재정을 주로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더라. 평당원의 당비로 운영하면 진보 정당이고, 기업(인)들의 후원금에 주로 의존하면 보수 정당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프는 회사의 재정을 이프 회원들의 후원금보다 기업체의 후원금으로 훨씬 많이 해결하고 있으니, 재정으로 보자면 보수 정당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단체를 유지하는 비용은 기업체에서 받고, 내세우는 주장은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거나 가진 자와 대기업의 횡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중적인 행동, 참~ 힘들다.
어서어서 우리 이프가 자라서, 마늘밭에서 돈다발 찾아내듯이 온라인이프(onlineif.com)의 밭에서 열성 독자들을 뭉치로 찾아내 봤음 좋겠다. 그래서 떳떳하게 독자들의 후원금만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원없이 해봤음 정말 좋겠다.
_나는 ‘강북 우파’다!(317-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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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제1부 내 이름은 을쑤니
· 을쑤니라 불러 다오 · 내 이름은 ‘미친년’ · “엘비스 저놈, 아직도 안 죽었냐?”
· 열 대의 매보다 한마디 칭찬 · 나는 아버지의 딸 · 엄마의 딜도 ·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니다
· 남편 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을 · 권력은 밥솥에서 · 엄마같이 살지 않으려 · 꽃보다 풍선
· 예쁘다 해주면 예뻐져요 · 한 눈 뜨고 사랑하기 · 결혼식의 ‘진짜 주인’ · 부부는 한 몸이 아니다
· 내 딸이 성을 갈았대! · 땅속 뚫고 하이킥 · 후배 기러기들에게 주는 쓴소리
제2부 을쑤니가 간다
· 나는야 타고난 싸움닭 · 영어로 욕하며 싸워 봤수? · “메이퀸이 돼도 거절하겠습니다”
· 오만원권 신사임당 왜 반대했나 · 여자에게 밤을 허하라 · 짐승에게 인권은 사치다
· 저출산에 개값 오를라 · 여자를 수출입? · 낙태, 남자를 벌줘라 · 당신 딸이 미혼모라도?
· 오늘의 병력, 내일의 국력 · 애 낳기 좋은 나라 · ‘네버 엔딩 스토리’ 할머니 육아
· 명절 며느리와 가을 전어 · 먼 데까지 볼 것도 없다 · 인정 말고 법대로
· 남자의 황혼이혼은 개고생 · ‘다른’ 사랑도 아름다워 ·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래?
· 뻔뻔해도 당찬 그녀 · 당신의 ‘꼴’값은? · 사랑하는 방법이 글렀다
제3부 을쑤나 놀~자~
· ‘민망 패션’, 그것은 모성애였다 · 스무 살 연하남의 연애편지 · 페미니스트 그녀들을 만나다
· 내가 첫사랑이라는 남자 · 남대문 같은 친구들 · 언니의 ‘세상의 모든 음식’
· 애증은 돌고 돌아 제자리 · 도끼 말고 꽃을 든 남자 · ‘골저스’가 사람 잡네! · 걸음아, 나 살려라
· 우울증아, 나랑 한바탕 춤추자! · 몸의 말을 들어 봐 · 웃어라, 나는 칠 테니! · 을쑨네 ‘평화 주막’
· 시골의 밤, 정말 길~더라 · 을쑤니표 명품 된장 · 양평댁이라 불러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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