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 아사다 지로의 작품!
의 작가 아사다 지로가 쓴 자전적 연작소설『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가 자신의 미숙한 청춘 시절을 담아 완성한 8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도쿄의 '가스미초'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청춘과 가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다. 빛나는 청춘과 그리운 고향, 따뜻한 가족에 대한 향수를 엿볼 수 있다.
할머니의 첫사랑까지 마음으로 품어준 할아버지, 눈물을 흘리며 첫사랑이 준 꽃다발을 강물에 던져버린 할머니, 노스승인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지 않는 아버지, 이노의 18년 삶의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준 할아버지, 친구의 하룻밤 추억을 위해 차에서 잠이 드는 기치, 친구의 노망든 할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는 료지와 기치, 리사의 위험한 사랑을 조용히 지켜봐주는 이노와 료지.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청춘과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를 되살려낸다. 그 따스한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적인 사람들이다. 또한 8편의 소설 속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이노의 모습이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지금 우리 주변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빛나는 청춘, 그리운 고향, 따뜻한 가족,
……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그리다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쉽게 그리고 아름답게 쓰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설은 읽는 순간 독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한 인터뷰에서 아사다 지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 출간한 『가스미초 이야기』에서 그 원칙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지켜내고 있다. 아사다 지로가 자신의 미숙한 청춘 시절을 담아 완성한 이 자전적 연작 소설은 정말 쉽고 또한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하여 이 8편의 소설을 만나는 순간, 독자들은 그가 풀어놓은 짙은 감동에 매료되어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빛나는 청춘과 그리운 고향 그리고 따뜻한 가족에 대한 향수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아사다 지로의 자전적 연작 소설 『가스미초 이야기』
『가스미초 이야기』는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 ‘아사다 지로’가 청춘과 가족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쓴 8편의 소설을 엇갈려 싣고 있다. 청춘의 우정과 연애 이야기를 담은 「가스미초 이야기」, 「굿바이 닥터 해리」, 「해질 녘 터널」, 「여우비」와 가족들의 잔잔하지만 깊은 사랑 이야기를 담은 「푸른 불꽃」, 「평지꽃」, 「유영」, 「졸업사진」이 그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도쿄의 가스미초(霞町)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쓰인 이 아름다운 소설들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차갑게 식어 있던 청춘과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되살려낸다. 그리고 그 따스한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냄새 나는 인물들이다.
끝나지 않은 할머니의 첫사랑까지 마음으로 품어준 할아버지, 첫사랑이 준 꽃다발을 눈물 흘리며 강물에 던져버리는 할머니, 노스승인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지 않는 아버지, 이노의 18년 삶의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준 할아버지, 친구의 하룻밤 추억을 위해 차에서 잠이 드는 기치, 친구의 노망든 할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는 료지와 기치, 리사의 외국인 교사와의 위험한 사랑을 조용히 지켜봐주는 이노와 료지…….
괜시리 마음이 가는 이 인물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때로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되어 눈물짓기도 하고, 아버지의 마음이 되어 분노하기도 하고, 이노의 마음이 되어 서툰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이루지 못한 사랑에 가슴 아파하게 될 것이다.
한편 8편의 소설 속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이노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의 졸업사진을 찍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할아버지, 이제 됐어요.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을게요. 제 키 이상의 허세는 부리지 않을게요. 입이 찢어져도 불평하지 않을게요.’라는 이노의 독백은 지난날 우리가 한 번쯤 되뇌었을 다짐이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는 동안 우리는 그 소중한 다짐들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아사다 지로는 그 다짐처럼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지금의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철도원』보다 감동적인 아사다 지로 최고의 작품입니다.” “향수가 느껴지는 이야기─당시를 살지 않은 사람도, 아직 십대의 젊은이조차, 읽는 이가 누구든지 그리움을 느끼게 되는 소설입니다.”라는 일본 독자의 감동을 이제 우리 독자들이 느낄 차례다.
─
가스미초 이야기
이노는 우연히 만난 하루코와 하룻밤을 보낸 후, 자신을 기다리는 그녀를 외면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의 사진관을 찾은 노부인으로 인해 하루코가 언덕에 사는 가지이 백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노, 그는 친구 도오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식장에서 하루코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가스미초의 안개 속에서 마지막 키스를 나눈다.
푸른 불꽃
이노의 할아버지는 메이지 시대의 명사진사다. 하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 노면전차의 기관사 준 짱의 사진을 망쳐버렸다. 이런 사실을 감춘 채―할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한―아버지는 준 짱의 사진을 다시 찍는다. 그 사진을 두고 두 사람은 말싸움을 시작하지만 이를 계기로 크리스마스 날 아오야마 묘지에서 꽃전차를 찍게 되고, 그날 할아버지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명사진사답게 우편엽서 같은 멋진 꽃전차 사진을 찍어낸다.
굿바이 닥터 해리
임시교사로 온 닥터 해리는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영국인이다. 어느 날 저녁 미스티에서 그와 만나게 된 이노와 료지 그리고 리사(그녀는 네이티브다)는 그와 함께 유흥가를 돌아다닌다. 그날 이후 리사는 이노와 료지의 친구가 아닌 해리와 연인이 된다. 그리고 중간고사와 함께 해리가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비가 오는 날 잔뜩 짐을 든 해리를 발견한 세 사람은 그에게 다가가고 료지는 리사와 해리가 이별의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평지꽃
어린 시절 혼자 가려는 할머니를 억지로 따라간 가부키 극장에서 이노는 노신사를 만난다. 기부키가 끝난 후 노신사는 이노의 손에 평지꽃과 복숭아꽃을 들려 할머니에게 가져다주라고 한다. 꽃을 받은 후 한참을 걷던 할머니는 꽃다발을 수로에 던져버린다. 눈물을 흘리며……. 얼마 후 할머니는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의 장례식 날 이노는 평지꽃을 구해 할머니의 품에 안겨드린다.
해질 녘 터널
한여름의 보충수업을 마친 다음 날 이노는 학년의 마돈나인 마치코와 여행을 떠난다. 저녁놀이 물들 즈음 그들은 연인곶에서 스무 살의 고등학생 도키타와 게이고대 의대생인 료코를 만난다. 네 사람은 함께 호텔로 향했지만 이노와 마치코만 남긴 채 두 사람은 사라진다. 개학날 도키타와 료코가 교통사고를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이노와 마치코는 그들이 두 사람을 만난 시각이 그들이 죽은 이후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유영(遺影)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노신사가 사진관을 찾았다. 그를 만난 할아버지는 화를 내다가 어느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주기까지 한다. 노신사가 돌아간 후 할아버지는 이노에게 그가 할머니의 첫사랑이자 죽은 신이치 삼촌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해 연말 가족들은 노신사의 죽음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고, 며칠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유영 곁에 노신사와 신이치 삼촌의 사진을 가져다놓고 눈물을 흘린다.
여우비
열여덟 살의 여름, 이노와 기치는 보타 해안에서 보트 대여일을 하는 다니를 만나 같은 집에 묵는다. 이노가 근처 카페에서 미사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기치는 다니와 함께 술을 마시고 그가 야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 날 미사와 다니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노는 불안해하지만, 다니는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온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미사의 말에 그냥 돌아왔다는 다니, 이노와 기치는 그에게서 진짜 남자를 발견한다.
졸업사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노, 기치, 료지는 미스티를 나서다 추위에 떨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가 이노를 찾아 이곳까지 온 것.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간 세 사람은 즐거운 연말 파티를 벌인다. 다음 날 세 사람은 졸업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할아버지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며칠 후 사진관 스튜디오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둔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린다. 장례식 전날, 이노는 할아버지가 찍어준 자신과 친구들의 살아 있는 졸업사진을 발견한다.
[책속으로]
“선생.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그 소설, 영화와 전혀 다르잖아요? 마지막 부분 말이에요.”
리사가 통역해주자 해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마지막 장면은 헤어질 뻔했던 연인이 비 오는 골목길에서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카포티의 원작을 보면 연인들은 아무 일도 없이 영원히 헤어진다.
“그게 영화와 소설의 차이래.”
우리는 리사의 입에서 나온 통역에 납득할 수 없었다.
“카포티도 할리우드도 감각이 좋지 않군. 나 같으면 키스를 하고 나서 영원히 안녕할 텐데.”
미국 병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료지는 어깨 너머로 엄지를 세우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마침 버스 정류장 뒤쪽에 적당한 골목이 있었다.
닥터 해리가 물었다.
“와이?”
“선생, 왜냐고 물으면 곤란하지. 당신들, 너무 촌스러워. 그럼 굿바이 닥터 해리.”
료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나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뒤를 돌아보았다.
술집 간판의 새하얀 불빛이 넘치는 골목 입구에서 두 사람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_ ‘굿바이 닥터 해리’ 86~88쪽 중에서
“저 할아버지, 꽃을 주려나봐요.”
할머니는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네가 가서 받아오거라.”
나는 할머니의 손을 놓고 자동차로 뛰어가서, 가슴에 넘칠 정도의 연분홍과 노란색이 가득한 꽃다발을 노신사에게 받았다.
“오늘은 셋쿠니까 할머니에게 드리렴.”
노신사는 그 말을 남기고 창문을 닫았다. 자동차는 즉시 저녁놀 속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의 물결 속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지하철을 탈까? 아니면 전차를 탈까?”
“난 전차가 좋아.”
“그러면 오와리초(尾張町)의 네거리에서 타자꾸나.”
“오와리초가 어디야?”
“미쓰코시(三越)와 핫토리(服部) 사거리. 4번가 말이야.”
할머니는 몹시 지치고 야위어 보였다.
입을 다물고 걸으면서 할머니는 긴자 4번가 교차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더니 지하철 입구를 지나쳤다. 나는 껴안고 있는 평지꽃 향기를 가슴 가득 채우며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을 놓으면 할머니가 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로키야(白木屋) 백화점에 들렀다 갈까?”
할머니는 그렇게 저물어가는 긴자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그 할아버지가 오늘 셋쿠니까 할머니에게 이걸 드리랬어.”
하지만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로키야 백화점도 그냥 지나쳤다.
니혼바시(日本橋) 앞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 꽃다발 버리렴.”
할머니는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는 내 손에서 꽃다발을 빼앗더니, 재빨리 지저분한 수로 안으로 내던졌다. 평지꽃과 복숭아꽃은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네온사인이 일렁이는 수면 위에서 잠시 흔들리다 이내 다리 밑으로 사라졌다.
_ ‘평지꽃’ 106~108쪽 중에서
“이노, 담배 피워줘.”
담배를 입에 물고 바닷바람을 막으며 성냥불을 그은 순간, 나는 연인곶에서 성냥불을 내밀었을 때 느꼈던 도키타의 차가운 손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우리는 사방의 어둠을 향해서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축축한 어둠 속을 잠시 걸어가자 땅바닥에서 기어오르듯 둥근 출구가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이나무라가사키로 저물어가는 저녁놀과 가을빛에 물든 유이가하마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경치에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뒤로 돌아 어둠을 향해 서더니, 온몸의 공기를 토해낼 정도로 “고마워~!”라고 소리쳤다.
“이노, 너도 말해.”
어둠을 향해 “고마워~!”라고 소리치자 이내 똑같은 메아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마치코는 마음을 담아서 다시는 하지 못할 입맞춤을 나누었다.
빛나는 쇼난의 저녁놀을 등진 채 나는 새카만 동굴 앞에서 활시위를 잡아당기듯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작은 턱을 옆으로 기울인 채, 두 팔로 내 목덜미를 껴안았다.
쓰르라미가 울고, 파도소리가 가슴을 쳤다.
마치 옛날 영화의 스틸 사진처럼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었다.
_ ‘해질 녘 터널’ 156~157쪽 중에서
“잠시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지.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야. 내가 그쪽으로 가면 더 이상은 안 돼.”
나는 안타까움이 목구멍까지 솟구쳐서 할아버지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할머니, 정말 아름다워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듯 할아버지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무릎 위에 있는 내 손등 위로 따뜻한 눈물이 떨어졌다.
할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바람처럼 갈라졌다.
“난 이 사람들의 장례식 사진을 모두 내 손으로 찍었단다. 사진사는 참 죄 많은 직업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이 직업을 내 대에서 끝냈을 텐데.”
“아빠도 사진사예요.”
“네 아버지는 아무 멋대가리 없는 풍경사진만 찍으면 돼. 그러니 괜찮아.”
그때 나는 “나도 사진사가 되겠어요.”라고 말했을까? 아니다. 아마 할아버지를 고민에 빠트리는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한 가지 선명한 기억이 있다.
툇마루로 들어오는 검붉은 저녁놀 빛이 할아버지와 내 그림자를 벽에 비추었다. 불단에 나란히 놓인 석 장의 사진에서 눈길을 돌리고 나서, 나는 벽에 뚜렷하게 찍힌 우리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나의 가느다란 목줄기와 약간 굽은 어깨가 할아버지와 똑같았다.
_ ‘유영’ 191~192쪽 중에서
장례식 전날 밤,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의 망령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암실에서 나와 료지와 기치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사진이었다.
우리의 얼굴은 천사처럼 청징하여 방탕의 흔적은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었다. 사진은 그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실물보다 더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청춘의 천 분의 1초를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촬영해주었다.
화장터에서 사진을 주었을 때, 기치와 료지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진처럼 외골수에다 수줍음이 많고 말보다 행동이 빠른 기치는 게이오대 경제학부에 합격하면 머리를 자르고 프라이팬을 쓴 후 포르쉐를 타고 할아버지 무덤에 오겠다고 맹세했다.
역시 사진처럼 허세와 화려함을 좋아하는 료지는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겠다, 아버지가 잔소리를 하면 기타를 메고 미국으로 도망가겠다고 다짐했다.
‘24×36밀리미터’의 작은 라이카판 필름에서 현상한 명함판 사진 뒤에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더듬거리는 글씨로 ‘촬영 이노 무에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쓴 마지막 글씨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앨범 한 권보다 더 훌륭한 졸업사진 한 장을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다.
_ ‘졸업사진’ 257~258쪽 중에서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가스미초 이야기 / 푸른 불꽃 / 굿바이 닥터 해리 / 평지꽃
해질 녘 터널 / 유영(遺影) / 여우비 / 졸업사진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