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마 제국이 쇠퇴하는 과정을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룬다. 서기 2세기인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 황제 시대에서 시작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 창건, 신성로마 제국 건국, 투르크의 침입에 의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멸망(1453년)까지, 약 1400년간의 역사를 기술했다.
그리스도교의 확립,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슬람의 침략, 몽골족의 서정(西征), 십자군 원정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사건을 다루어 고대와 근세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하며,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닌다. 17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여섯 권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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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계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는 과정을 아주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 17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여섯 권으로 간행된 [로마 제국 쇠망사]는 수없이 많은 로마사 책들 중에서 대표적 작품이며, 영문학사상의 명저로도 꼽힌다. 서기 2세기인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 황제 시대에서 시작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 동로마 제국 창건, 신성로마 제국 건국, 투르크의 침입에 의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멸망(1453년)까지, 약 1400년간의 역사를 기술하여 로마 제국의 역사를 최초로 개관한 역사서로 평가받았다. 그리스도교의 확립,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슬람의 침략, 몽골족의 서정(西征), 십자군 원정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사건을 다루어 고대와 근세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하는 저서로서,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 세계의 기원인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 중의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서로서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주는 영원한 고전
기번은 제일급 역사가이자 큰 문장가로 불린다. 그 자신 일급 역사가였던 토인비는 “기번의 정신은 모든 저명한 서구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기번은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들을 균형감각을 잘 갖추어 가며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서는 압축하고 저기서는 확장한다. 그는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엔터테이너이다.”라고 쓴다. 이 모두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고 붙인 평들이다.
다음은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의 말이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서술된 독특한 역사서다.1400년에 걸쳐 서서히 멸망해 가는 대제국의 역사를 치밀한 묘사와 탁월한 해석으로 하나하나 짚어 간 이 웅편거작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악덕들이 장강의 물결처럼 펼쳐진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권력욕과 성욕, 뒤틀린 심성과 모자라는 지성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제위 찬탈, 골육상잔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기번은 이토록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성을 무릅쓰고 쌓아올린 인류사 최대의 영광으로 로마사를 조망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역사서이면서도 단순한 역사 서술을 뛰어넘는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주는 불후의 고전이다.”
그리스.로마는 서양 문명의 원형이다. 흔히 말하듯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현대 서양 문명의 원형인 그리스.로마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광활한 제국을 이루었던 로마 역사의 덩치에 비해 전혀 작지 않은 그리스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기번은 이 책을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였고, 또 이미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영국인이면서 키케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한동안 두었다가 이를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그 결과를 원문과 대조해 가며 학습하는 등의 언어 능력은 로마의 역사를 다루기 위해 이미 준비되어 있는 자질이었다. 그는 이 언어로 말하고 저 언어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리스어, 스페인어, 히브리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가 아닌 원사료를 읽어 낼 수 있었던 그는 역사가로서 가졌던 신념에 따라 많은 준비를 하였다. 역사가로서의 그의 신념은 성실성이었다. 기번은 역사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작품들을 능숙하게 이용했는데, 자신의 역사를 풍부하고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 우선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그 외의 각종 자료들을 섭렵하여 책의 곳곳에서 풀어내 놓는다. 기번을 읽는 재미가 아마 여기에서도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연구 성과가 많이 축적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사료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분석이 종종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번은 엄청난 양의 자료를 되도록 정확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다양한 지식과 견해, 정보를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는 본문에 육박하는 수많은 각주가 잘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기번은 입수 가능한 자료에 대한 철저한 탐구, 상세한 고증,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집필 과정을 성실하게 이루어나갔으며, 그 결실인 ??로마 제국 쇠망사??는 영국의 역사 서술에 주요한 발전을 이룩해 낸 저서로도 평가받는다. 영문학사상으로도 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이 책이 역사가로서의 기번의 이러한 성실성이 없었다면 그 유려하다는 문체만 자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로마 제국 쇠망사]-수많은 로마사 관련 책들을 파생시킨 모태
[로마 제국 쇠망사]와 관련하여 항상 언급되는 것이 그 서술의 규모다. 로마는 조그마한 도시국가였다. 이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불멸의 성공을 거듭하여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가 스러져가기까지의 과정의 서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어서, 제1권이 출간된 1776년부터 마지막 제6권이 나올 때까지 12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준비 과정, 집필 기간 등을 포함하면 모두 20여 년의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서기 98년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지나 그 후 1000년 동안 더 존속한 동로마 제국, 제국과 접하고 있던 모든 문명국 및 이른바 ‘야만국’과 그 구성원들, 이슬람교의 대두, 신성 로마 제국, 십자군 운동 등 요컨대 서기 100년경부터 1400여 년에 이르는 서방의 역사, 그리고 서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동방의 역사(기번은 당시 영어로 번역된 동양사 관련 서적을 모두 섭렵했다.)를 망라한다. 그 긴 세월과 광범위한 지역의 역사가 오랫동안 가다듬어진 기번의 통찰력과 균형 잡힌 시각 속에서 서로 연관을 이루며 잘 결합되어 방대한 규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사실 주지하듯이 기번의 주된 관심은 서로마 제국의 역사였다.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의 제3권까지 집필한 다음, 다소 망설인 끝에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서술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저작은 두 부분으로 대별된다. 제1권에서 4권까지로 구성된 첫 부분은 서기 2세기부터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서기 641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1~47장), 나머지 두 권은 7세기에서 15세기까지를 다루고 있다.(48~71장) 그 결과 처음 네 권에서는 약 500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반면 마지막 두 권은 거의 100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는 불균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연구 풍토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서로마에 비해 훨씬 빈약한 자료를 바탕으로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개관하고, 이슬람에 대해 불편부당한 서술을 하고 있는 것 자체로 벌써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하겠다.
흔히들 로마 제국은 서기 476년의 서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그 생명을 다했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로마의 몰락’이라는 급격한 변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476년의 서로마 제국 멸망에 역사적 의의를 크게 두지 않으며,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은 수세기에 걸친 과도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동로마 제국 존속의 의의를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어느 순간 흥하고 망하는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연속’의 역사가 중요시되는 것이다.
국내 최초 영한 대역 완역본 출간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은 다른 역사서들과 차별화된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 주는데 우선 그 문체가 많이 언급된다. 기번 자신이 스스로 밝힌 대로 제1장은 세 번, 제2장은 두 번을 썼다고 할 정도로 이 책에 맞는 표현과 서술 방식을 찾기 위해 상당히 고심하였다. 평소에 그의 집필 방식은 “긴 단락을 하나의 문장에 넣어 귀로 음미해 보고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마지막 손질을 하고 나서 펜을 움직이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번의 문장은 소리 내어 읽지 않더라도 그 낭랑한 음률이 귀에 들리는 듯한데 영어의 가장 큰 강점인 구어체를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영국에서의 역사 서술의 경향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과 달리 일찍 혁명을 경험하여 18세기에 들어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며,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제도들에 대체로 만족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역사 서술에서 다소 표면적인 사고에, 사실에 대한 분석보다는 설명을 선호하여 수사학적인 표현과 미학적인 서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독특한 표현 방법에 대한 기번의 개인적인 관심에 더해 그의 역사 서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큰 문장가인 기번을 동시에 위대한 역사가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냉철함과 독창성이다.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기번의 과감하고 정확한 기준,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지혜, 현명한 유보와 적절한 회의 등은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서술하면서 끊임없이 곱씹어 보는 화두가 되었다.
또 한 가지 기번이 색다른 점은 역사가의 주요 역할이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거나 흥망성쇠의 필연적인 주기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과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과거와 과거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하던 에드워드 기번이 1764년 가을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의 폐허를 바라보고 로마의 역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그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기번은 정치(精緻)하면서도 재미있다. [쇠망사]가 발간되고 그 견고한 구조를 헐뜯는 비판서들이 많이 발표되었지만, 로마 제국의 쇠망의 과정을 기번만큼 설득력 있게 다룬 사람은 없을 것이며, 아직도 그를 뒤집거나 그 예봉을 꺾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대들은 군주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머리 위에는 언제나 검이 매달려 있다네. 군주는 자신의 근위병들마저 두려워하며, 동료도 믿지 못한다네. 움직이거나 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더 이상 군주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네. 또한 나이나 덕성, 품행 그 어떤 것도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비난에서 보호해 줄 수 없다네. 이렇게 나를 제위에 올려놓았으니, 그대들은 나에게 근심 가득한 일생과 때 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안겨 준 셈이네. 다만 남아 있는 유일한 위안은 나 혼자서 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뿐이네.”
로마 황제의 변이다. 사실 로마 역사가 근본적으로 생경한 것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교양 터전에서 이 방대하고 포괄적인 역사 여행에 선뜻 참여하기가 주저되지만, 이 책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배반, 명예, 전쟁, 인물, 사건, 제도, 경제, 예술, 문화, 종교, 미신, 유럽 아닌 세계, 민중의 투쟁, 사랑, 덧없음, 지구온난화 문제 등 (26장에는 ‘Corea'가 나온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이 영원한 고전은 우리에게 두렵지만 유익한 교훈이다.
* 일본에서는 동경대학 영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지난 1985년에 작고한 나카노 요시오(中 野好夫)외에 두 명의 번역자가 붙어서, 1976년부터 1993년에 걸쳐 [쇠망사]를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완역이 아니다. 역자들 스스로도 기번을 따라잡지 못한(그의 언어 능력과 방대한 지식에 당황했다고 솔직히 밝혀 놓고 있다.) 번역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밝혀 놓았으며, 수많은 각주는 대부분 생략해 버렸다. 기번의 ‘잡담’이라고도 불리는 각주가 원본에는 8300여 개가 있었는데, 가장 뛰어난 편집판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번에 우리가 번역 대본으로 삼은 버리(J. B. Bury) 판에는 4700여 개로 줄어 있다. 일본에서도 이 버리의 판을 번역했는데 본문 이해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각주를 생략해 버린 것이다. 이번 민음사 판에서는 각주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였으며, 4700여 개 중에 본문 이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350여 개는 번역을 생략하였음을 밝힌다. 하지만 민음사 판은 영어판을 제외한 어느 다른 판본보다 각주를 많이 번역했기 때문에 감히 완역판이라 자부한다. 총 여섯 권으로 우선 1, 2권을 내고 2, 3개월 간격으로 두 권씩 해서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3권 소개
<로마 제국 쇠망사>의 제3권은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제위에 오른 서기 375년을 전후해 시작되어 대략 서로마 제국의 멸망 시점인 서기 476년 정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기간은 예로부터 유럽 세계에서 논의되어 온 ‘로마 쇠망’의 문제의 전형을 보여 주는 시기이다. 이른바 ‘민족대이동’의 시기로서 야만족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서로마 제국을 휩쓸고 다니며 거대 제국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 파국과 몰락의 시기이다. 여기서 기번은 알라리크와 아틸라와 같은 야만족의 수장들이 서로마 제국을 침략하고 결국은 멸망시킨 과정을 생생하고도 자세하게 서술해 나간다.
각 장의 제목들도 다소 암울하다. ‘시대의 타락’, ‘해이해진 보병 부대’, ‘동서 로마 제국으로의 분할’, ‘고트족의 약탈’, ‘로마 시(市)의 고난’, ‘로마의 몰락의 징후들’ 등의 제목은 웅장하고 화려한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장기 정체 내지 점진적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손에 잡힐 듯이 보여 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사망(서기 395년) 후 그의 장, 차남이 각각 동서 양 제국의 제위에 오르자 로마 제국은 영구히 분단되고, 다 같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두 황제를 두고 이 시기에 양대 제국의 궁정을 움직인 세력은 간신배와 황후 및 황제의 자매 등 여성들이었다. 알라리크가 지휘한 고트족은 동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를 유린한 다음 이탈리아 본토에 침입하고, 410년에는 수도 로마를 침략하고 약탈한다. 갈리아, 에스파냐, 아프리카도 야만족의 침입에 굴복하고,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침입이 시작된다. 이윽고 서기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여기서부터 기번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죽음으로부터 20년 사이에 연이어 아홉 명의 황제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파국으로 치달은 서로마 제국의 황제들과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을 고찰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때부터 서로마 제국은 로마의 정통 황제들이 아닌 야만족의 왕들이 지배하게 되었으며, 리키메르, 오레스테스, 오도아케르 등이 권력을 잡고 황제 메이커의 역할을 하면서 동로마 제국 황제의 승인을 받는 형식을 취하면서, 이른바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외에도 기번은 3권에서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이단파, 수도원 생활 등 서양 세계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1, 2권에 이어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3권의 마지막 장인 38장을 끝내면서 기번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한 개관’이라는 글을 덧붙이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개 도시가 일어나 제국으로 팽창한 이 경이로운 사건은 충분히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그러나 로마의 쇠퇴는 무절제한 팽창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이 쇠퇴의 원칙을 잉태했고, 정복이 진행될수록 파멸의 원인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이 겹치면서 인위적인 지지대가 벗겨지자 이 거대한 구조물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붕괴되었다. 그 패망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백하다. 우리는 로마 제국이 왜 멸망했는지를 묻는 대신 오히려 어떻게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는지 놀라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기번은 현재로 돌아와 과거 로마에 닥친 재난이 현대 유럽에서도 반복될 것인지를 탐구해 보자며, 이와 같은 탐구가 강대한 제국의 몰락을 설명해 줌과 동시에 당대 유럽의 실제적인 안정성의 근거를 설명해 줄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3권을 끝맺고 있다. E. 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명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4권 소개
<로마 제국 쇠망사>의 제4권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서기 476년) 난 후부터 서기 628년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에 평화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제일 주목할 만한 점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527~565년)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법 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로마 민법의 편찬 사업을 주도하였고, 성 소피아 대성당을 비롯하여 많은 교회와 성채, 요새의 건립, 페르시아 왕 호스로우(누시르반)와의 대치,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 세계와 아프리카 정복에 따른 제국 통치의 행정 개혁, 로마 가톨릭 교회와 긴밀하게 제휴하면서 제국 내의 강력한 신앙 통합과 이교도 억압 등을 통해 로마 제국의 부흥을 목표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의 통산 38년에 걸친 통치 업적은 기번이 전(全) 다섯 개 장(章)에 걸쳐 기술하고 있는데, 다만 고대의 전통적인 로마 제국의 중흥을 시종일관 겨냥한 그의 통치 행위들은 지금까지 주로 유스티니아누스의 야심에 찬 개인적 시도로 간주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로마 법전 편찬과 같이 고대 로마의 지적 유산의 획기적인 집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극으로 끝난 시대착오적인 외정(外征)으로 부정적인 역사적 평가를 받아 온 것이다. 하지만 변경 지방의 이름 없는 가문 출신의 이 황제가 원대한 야심과 웅대한 계획,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과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비롯하여 뛰어난 문무 양면의 인재를 발굴하여 국내외 정책에 등용한 높은 안목과 식견은 이 시기의 역사 상황과 맞물려 빛을 발했다. 이후의 무기력하고 허약한 황제들도 본질적으로는 유스티니아누스의 통치 원리를 모범으로 삼게 되면서 그의 치적은 동로마 제국 1000년 역사의 골격을 이루게 된다.
한편 이 시기 로마와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방 세계는 야만족들의 계속되는 침입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원래의 로마 제국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 버리면서 간혹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45장에 ‘로마의 고난(Distress of Rome)’이라는 제목이 나오는데 이것이 당시 로마와 서방 세계의 정황을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이후 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입, 페르시아 왕 호스로우 2세의 침공, 이슬람 세력의 등장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부 세력 압박의 와중에서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교의 논쟁, 성상 숭배의 가부를 둘러싼 정치적, 교권적 불화와 대립으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특히 아주 오래전부터 세력 다툼을 벌여 온 페르시아 제국에는 호스로우(일명 누시르반)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동로마 제국과 패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결국 서기 628년 3월 동로마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제와 페르시아의 시로에스 사이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동로마 제국은 이제 또 다른 거대 세력인 이슬람교도들과 곧 맞닥뜨려야 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7세기 비잔티움 중흥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는 이사우리아 왕조, 마케도니아 왕조, 두카스 왕조 들을 거치면서 제국의 번영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번은 그리스도교계의 상황을 정리한다. 이교 신앙이 소멸하고 자신들의 승리를 단독으로 누려도 좋았을 그리스도교도들의 가슴 속에는 불화의 원리가 있었는데, 삼위일체 논쟁에 이어 성육신(成肉身) 논쟁이 일어나 교회에는 불명예스럽고 국가에도 해로운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의 기원은 더 복잡했고, 후세에 끼친 영향은 훨씬 지속적이고 파괴적이어서 피비린내 나는 분쟁을 불러일으키는데, 기번은 이후 250년간의 종교 전쟁을 원시교회의 교의를 신중하게 검토하면서 동방 여러 종파의 교권과 정치 분리를 논하면서 요약하고 있다.
5권 소개
제5권부터는 <로마 제국 쇠망사>의 후반부로 접어든다.(총 6권으로 마무리) 여기서부터는 역사의 무대가 유럽에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단번에 확대되어,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멸망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7세기 이래의 아라비아, 투르크, 노르만, 슬라브 등 여러 민족의 동향으로 옮아가면서, 이들 제 민족의 융성으로 노쇠한 거대 제국인 비잔티움 제국이 한 발자국씩 쇠락의 길을 걷는 역사가 전개된다. 이 중에서 제5권에서는 7세기 비잔티움 중흥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치세인 7세기 초엽부터 제국이 급격한 쇠퇴에 접어드는 마누엘 콤네누스 황제의 치세기인 12세기 중반까지를 다루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서기 527~565년) 이후 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입, 페르시아 왕 호스로우 2세의 침공, 이슬람 세력의 등장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부 세력 압박의 와중에서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교의 논쟁, 성상 숭배의 가부를 둘러싼 정치적, 교권적 불화와 대립으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특히 아주 오래전부터 세력 다툼을 벌여 온 페르시아 제국에는 호스로우(일명 누시르반)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비잔티움 제국과 패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결국 서기 628년에 비잔티움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제와 페르시아의 시로에스 사이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이제 또 다른 거대 세력인 이슬람교도들과 곧 맞부딪치게 된다.
7세기 전반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마호메트의 이슬람교는 곧 그 세력을 확장하여 사산 조의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후, 두 차례에 걸쳐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는 한편, 시리아, 이집트, 아프리카, 스페인을 장악함으로써 마호메트의 후계자인 칼리프들의 여러 왕조가 다스리는 광대한 이슬람 제국을 구축하였다. 제법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세 장(章)에 걸쳐 이 과정을 서술하면서 기번은 당대 유럽인으로서는 편견이 없을 수 없었을 이슬람교에 대해 불편부당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기번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의 깊은 연구와 역사관의 균형을 잘 보여 준다. “우리가 경이롭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의 종교의 전파가 아니라 그 영속성이다. 그가 메카와 메디나에 새겨 놓은 순수하고도 완벽한 인상은 1200년이라는 세월의 대변화를 겪은 지금까지도 인도, 아프리카, 터키의 코란 신봉자들에게 남아 있다.” 세계적인 종교 혁명의 성격과 그 역사적 전개를 그려 내는 기번의 공평하고 냉정한 필치는 <로마 제국 쇠망사> 후반부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치세 이후 이사우리아 왕조, 마케도니아 왕조, 두카스 왕조, 콤네누스 왕조 등의 무능하고 허약한 황제들을 거치면서 제국의 번영은 점차 쇠락하게 된다. 8세기에 들어서는 황제 레오 3세가 내린 우상 숭배 금지령으로 로마 교황과 결정적인 대립을 초래하였고, 서기 800년에는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분리한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로마와 서방의 황제로 프랑크 왕국의 영웅 샤를마뉴가 등극하기에 이른다. 기번은 또한 9, 10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종교, 문화, 경제, 정치의 난맥상과 퇴폐상을 자세히 서술하고, 노르만인들의 대규모 이동, 정복 사업, 정착 과정을 살피는 동시에,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지에서의 제 민족의 자주, 독립적인 움직임에 주시하면서 제국 멸망의 복선을 깔아 나간다.
이제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만회할 수 없을 정도의 쇠락으로 치달아 이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영웅들은 가려져 광신의 무리가 활개를 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1세기 후반 셀주크 터키의 소아시아 정복, 예루살렘 지배는 향후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라는 격변의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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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해제
에드워드 기번의 서문
일러두기
1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범위와 군사력,서기 98 ~ 180년
2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통일과 내부적 번영·예술·사람들
3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정치 체제
4 콤모두스의 잔인성,우행,살육·페르티낙스의 즉위·그의 개혁 시도·근위대에 의한 암살·분노
5 근위대,제위를 공매에 부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게 팔다·브리타니아의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시리아의 페스켄니우스 니게르,판노니아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페르티낙스 황제의 복수를 선언하다·내전과 세베루스의 승리·군기의 해이·새로운 원칙들
6 세베루스 황제의 사망·카라칼라 황제의 학정·마크리누스 황제의 찬탈·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우행·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미덕·군대의 방종·로마 재정의 전반적인 상태
7 막시미누스 황제의 즉위와 폭정·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의 반란과 원로원의 권위·내전과 폭동·막시미누스 황제 부자,막시무스 황제와 발비누스 황제,고르디아누스 3대 황제의 횡사·필리푸스 황제의 찬탈과 100년제
8 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 의한 군주정 복고 후의 페르시아 정세·그의 성격과 원칙
9 야만족의 침입이 시작될 때까지의 게르마니아 정세,데키우스 황제시대·서기 248년
10 데키우스 황제,갈루스 황제,아이밀리아누스 황제,발레리아누스 황제 및 갈리에누스 황제·야만족의 대규모 침입·30인의 참주들·19인의 실존 참주들
11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치세·고트족의 패배·아우렐리아누스의 승리,개선,사망·제노비아의 성격
12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사후 군대와 원로원의 동향·타키투스 황제,프로부스 황제 및 카루스 황제 부자의 치세
13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세 명의 동료 황제 막시미아누스,갈레리우스,콘스탄티우스의 통치·질서와 평온의 전면적인 회복·페르시아 전쟁과 승리 및 개선·새로운 통치 방식·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퇴위
14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퇴위 후의 혼란·콘스탄티우스 황제의 사망·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막센티우스 황제의 즉위·여섯 황제의 동시재위·막시미아누스 황제와 갈레리우스 황제의 사망·막센티우스와 리키니우스에 대한 콘스탄티누스의 승리·콘스탄티누스 치하의 제국 통일·법률·전면적인 평화
15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사상,풍습,신도 수도 및 상황·각종 의식,학예,축전
16 네로 황제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까지의 로마 정부의 그리스도교 정책·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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