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 한가운데서 300여 년간 존속해온 아미쉬 공동체의 기록.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잡지 '플레인'에 실린 26편의 에세이를 엮었다. 아미쉬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개혁가들을 개혁하려 했던 가장 급진적인 종파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현재 약 25만명이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들은 무분별한 소비에 삶을 쓰거나 기술의 편의에 몸을 맡기기보다, 스스로 땀 흘려 노동하고 손수 만드는 즐거움을 누리며 이웃과 서로 돕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아내는 이들의 삶은 절제와 만족을 잃은 현대사회에 대한 근원적 도전이자 새로운 영감이 되어왔다.
농부와 시인, 엄마와 할아버지, 기자와 환경운동가, 그림작가 등 다양한 이들이 나직하게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는 더없이 진솔하고 유쾌하며 따뜻하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부터 땅을 일구고 우정을 가꾸기,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요리하기,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기까지. 좋은 삶을 살며 나쁜 세상을 거슬러 행진하는 고요한, 그러나 힘 있는 삶의 혁명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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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 소개
돈이 지배하는 현대문명 밖으로 걸어 나와 진짜 삶의 세계로 들어선 사람들
‘더 적은 소유, 더 많은 향유’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들이 사는 마을』(원제 The Plain Reader)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잡지 「플레인」에 실린 26편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농부와 시인, 엄마와 할아버지, 기자와 환경운동가, 그림작가 등 다양한 이들이 나직하게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는 더없이 진솔하고 유쾌하며 따뜻하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부터 땅을 일구고 우정을 가꾸기,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요리하기,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기까지. 좋은 삶을 살며 나쁜 세상을 거슬러 행진하는 고요한, 그러나 힘 있는 삶의 혁명이 펼쳐진다!
지금 내 삶이 혹사당하고 소진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우리 사회와 이 세계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낀다면,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는 무력감에 좌절하고 있다면, 『그들이 사는 마을』로 여행을 떠나보자.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삶의 이야기로부터 “저건 나도 해볼 수 있겠어”라는 용기,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어”라는 소망, 무엇보다 진정한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 적은 소유와 더 많은 향유’로 초대하는 ‘지혜의 사상서’이자 ‘실천적 안내서’. 오늘, 우리에게 다르게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출판사 서평
“단순한 삶은 풍요로움이다”
돈이 지배하는 현대문명 밖으로 걸어 나와 진짜 삶의 세계로 들어선 사람들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 한가운데서 300여 년간 존속해온 아미쉬Amish 공동체의 기록
『그들이 사는 마을』(원제 The Plain Reader)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 Center for Plain living’에서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플레인Plain」에 실린 글을 엮은 책이다. '단순한', '순수한', '소박한' 등의 의미를 가진 'Plain'은 ‘아미쉬 Amish’를 지칭하는 ‘Plain People’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아미쉬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개혁가들을 개혁하려 했던’ 가장 급진적인 종파로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300여 년간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 한가운데서 공동체를 지켜왔으며, 현재 약 25만명이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들은 무분별한 소비에 삶을 쓰거나 기술의 편의에 몸을 맡기기보다, 스스로 땀 흘려 노동하고 손수 만드는 즐거움을 누리며 이웃과 서로 돕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아내는 이들의 삶은 절제와 만족을 잃은 현대사회에 대한 근원적 도전이자 새로운 영감이 되어왔다.
손으로 활자를 조판하고 목판화를 새기고 태양열 수동인쇄기를 이용해
전세계에 단 5천 부만 발행하는 잡지 「플레인Plain」에 실린 26편의 아름다운 에세이
아미쉬와 퀘이커 등 기계문명과 소비주의를 벗어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에 따라 손으로 활자를 조판하고 목판화를 새기고 태양열 수동인쇄기를 이용해 「플레인」지를 만들어왔다. 손으로 엮은 이 아름다운 잡지의 구독을 원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지만 발행인들은 소박한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는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발행부수를 5,000부로 제한했다. 아마도 작은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구독 신청을 거절하는 잡지는 「플레인」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소문은 퍼져나갔다. 조용하게, 그러나 힘 있게. 「플레인」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던 ‘뉴욕타임즈’ 기자는 2주 뒤 사표를 내고 거대기업에 맞서 지역사회를 지키는 운동을 시작했고, 글로벌 기업의 컴퓨터 전문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들과 비슷한 결심을 하거나 감명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뉴욕타임즈’, ‘타임’, ‘와이어드’ 등에 소개되면서 「플레인」과 ‘아미쉬’는 점차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농부와 시인, 엄마와 할아버지, 특별하지 않은 이들이 쓴 특별한 삶의 이야기
‘저건 나도 해볼 수 있겠어’라는 용기,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어’라는 소망, 그리고 진정한 기쁨!
지금 내 삶이 혹사당하고 소진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우리 사회와 이 세계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는 무력감에 좌절하고 만다.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가 다른 길을 찾으려는 이들의 용기마저 꺾어버리는 방법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위험한 선물’이다. 농부와 시인, 엄마와 할아버지, 기자와 환경운동가, 그림작가 등 다양한 이들이 나직하게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는 더없이 진솔하고 유쾌하며 따뜻하다. 이들은 우리가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가르치거나 고함 치지 않는다. 대신 담담하고 재미있게, 겸손한 어조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로부터 “저건 나도 해볼 수 있겠어”라는 용기,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어”라는 소망, 그리고 진정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좋은 삶을 살며 나쁜 세상을 거슬러 행진하는 고요한, 그러나 힘 있는 삶의 혁명
오늘, 우리에게 다르게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나는 끊임없는 영업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며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는 사람들. “내 마음의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는 방송이 아닌 내가 결정한다”며 TV와 라디오를 끄고 노래와 대화를 시작한 사람들.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아닌 진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너는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이 사회에 대한 단호한 저항이기도 하다. 한 아미쉬 농부는 그들의 삶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것을 포기하는 삶.” 또한 『그들이 사는 마을』 속 사람들은 “지금 우리에겐 ‘무언가를 누릴 자유’보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자유’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도 한 발을 빼고 한 발을 내디디며 나아가고 있는 『그들이 사는 마을』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우리에게 ‘살아있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부터 내 손으로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요리하기까지
‘더 적은 소유와 더 많은 향유’로 초대하는 ‘지혜의 사상서’이자 ‘실천적 안내서’
이 책은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유를 되찾는 방법은 무엇인가? 소비하지 않고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왜 모두가 이토록 건강을 걱정하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 컴퓨터와 텔레비전은 무엇을 빼앗아 갔을까? 우리는 그 모든 기계를 가지고도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물음들이 “이 시대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온한” 무언가가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말’을 넘어 ‘삶’으로, 저마다 스스로가 ‘답’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부터 땅을 일구고 건강한 음식을 키우기,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요리하기,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끄고 침묵을 되찾기, 서로 도우며 우정을 나누는 일까지. 『그들이 사는 마을』은 ‘더 적은 소유, 더 많은 향유’로 초대하는 ‘지혜의 사상서’이자 ‘실천적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두려움은 오늘날 우리 문화의 뼈대를 구성하는 부분이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검사를 하고 더 많은 정보를 모은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통제할 수 있고, 더 많이 통제할수록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더 많이 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까지 통제하려는 시도는 훨씬 더 무서운 시나리오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 아이들은 기계로 가득한 환경에서 더 고통받으며 태어나는데도 진통 중인 어머니가 겪는 온갖 의료 개입 덕택에 ‘구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생의 첫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낸다. 그때야말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받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낳는 가장 안전한 방법」 중에서
여러 세대 동안 간단한 수공구만을 사용하던 평범한 사람들도 집에서 아이들과 연로한 부모님을 돌볼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발명품과 노동 절약형 장비를 갖추고도 병든 부모님을 돌볼 시간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런 변화가 생겼는가?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살던, 모두를 위한 자리와 역할이 있던 그 시절보다 우리는 진정 진보한 것일까? -「함께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도서관에 가보세요…… 사서가 없답니다! 은행에 가면 은행원이 없고, 맥도날드에 가면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일은 기계가 하지요. 그렇다면 효율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컨대 제너럴 모터스가 효율성을 개선했다는 기사가 실리면 그건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체했다는 말입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했다는 뜻이지요. -「기업과 기계의 지배에 맞서」 중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만약 아이들에게 지금이 아니라면 20년이 지난 뒤엔 영영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중에서
‘나쁜’ 삶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갖는 것,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모으는 것, 적에게 복수하는 것, 그다지 인간답지 못한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런저런 것에 중독되는 것. 학교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나쁜 삶을 성취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찌나 잘 가르쳤는지 결국 우리 정부 조직은 자기 인생을 형편없이 사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우리 모두는 심각한 곤란에 빠졌다. -「학교가 빼앗아간 아이들의 시간」 중에서
나는 열네 살 된 친구 레베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장난감과 그밖에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쓰고 있어.” “사랑해주고 안아주는 사람이면 되지, 뭐.” “그래, 동감이야! 하지만 그걸로 어떻게 450단어를 채우지?” “이렇게 쓰면 되잖아.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해주고 안아주는 사람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필요하다.” 이번에는 두 살짜리 딸 사라에게 물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니?” “아빠.” 이튿날에는 일곱 살인 딸 줄리아에게 물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야?” “내 동생 사라.”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중에서
나는 제도 교육의 치명적인 영향력에 맞서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당신의 삶에, 그리고 아이의 삶에 조용히 있는 시간을 만들라. 얼마간의 고독은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 둘째, 당신도 아이도 자연스러운 호기심으로부터 창조적으로 배우라. (…) 셋째, 아이가 질문할 때 아이를 진지하게 가르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하라. 부모와 교사들은 엄청난 책임감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마음에 억지로 정보를 밀어 넣으려 한다. (…) 넷째, 아무것도 하지 마라. 아이들은 오직 그 순간만 알 뿐, 미래를 예견하고 대비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기어다니거나 굴러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던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다섯째, 전자매체를 손에 쥐여주고는 아이를 교육하고 있다는 생각도 버려라. 컴퓨터를 설정하고 사용하는 법을 훈련시키지만, 대체 그 컴퓨터를 채워 넣을 가치 있는 생각은 어디에서 기른단 말인가? 컴퓨터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저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지혜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스스로 배운다」 중에서
“저기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작은 나무가 뭔지 할미한테 알려주련?” 두 아이 다 몰랐다. “나도 모르겠구나. 그럼 저 나무를 뭐라 부를까?” 할머니가 말했다. “이름 없는 나무라고 불러요.” 수즈가 말했다. “그거 좋구나.” 할머니가 맞장구쳤다. “교육이라는 것의 절반은 그냥 이름만 배우다 끝나지. 하지만 이름을 안다고 그것에 대해 아는 건 아니란다. 저 꽃에서 무엇이 나오나 지켜보자꾸나.” -「메마르고 상처 입은 이 세상에」 중에서
한 가족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뭐 그리 대단한 변화가 생기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영적 차원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한 사람의 믿음은 중요하다. 성서에도 완전한 파멸로부터 세상을 구한 노아의 믿음이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보라. 한 사람의 믿음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는가. 우리의 일이 무엇이든, 그것이 크든 작든, 우리는 믿음을 실천한 이 위대한 전통을 따르고 싶다. -「내 손으로 집 짓기」 중에서
지난가을 성찬식에서 여든일곱 살인 나의 아버지와 아흔 살인 요나스 씨는 몸을 구부린 채 서로의 발을 부드럽게 씻겨 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살면서 같은 교회를 다닌 지도 (자녀와 손자들도 같은 학교에 다녔지) 벌써 6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자네가 필요하네그려.” 그분들은 봄 성찬식이 오기 전에 함께 묘지에 묻혔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중에서
별첨) 『그들이 사는 마을』 수록 글 중
「메마르고 상처 입은 이 세상에」(전문) -진 록스던Gene Logsdon
라일리와 수즈는 여느 때보다 신나게 김매기를 도왔다. 김을 매고 시간이 남으면 할머니가 노래하는 시내에 데려간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홈스쿨링으로 자란 라일리와 수즈는 자신들의 놀이터이자 교실인 이 동네에 노래하는 시내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특별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을 마친 라일리와 수즈는 할머니와 함께 농장을 가로질러 시냇가로 향했다. 노래하는 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소리로 노래할까? 아이들의 가슴은 기대로 부풀었다. 모험을 하게 되리라는 건 분명했다.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극적인 모험과 흥분을 찾아내는 데 천재적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원래 할머니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저기 야생 아스파라거스밭 좀 보세요.” 열한 살 라일리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우리 농장에는 열두 개의 아스파라거스밭이 있고 모두 여든네 개의 아스파라거스가 자라고 있어요. 벌써 쉰일곱 줄기를 잘랐고요. 아, 아스파라거스는 정말 맛있어요. 저는 특히 버섯과 같이 먹는 걸 좋아해요. 아빠는 지금까지 크고 노란 아스파라거스를 144개나 찾았는데 저는 하나도 못 찾았어요.”
열 살 수즈는 할머니의 손을 끌고 속이 빈 나무 앞으로 데려가 위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늙은 수리부엉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어요. 새끼들이 가끔 둥지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요, 눈처럼 하얘요.” “자라면 갈색으로 변하지.” 라일리가 맏형다운 의젓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할미와는 정반대구나.”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보여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뉴스를 들은 것처럼 반응했는데, 할머니에게는 실제로 그랬다. 할머니는 직접 보고 냄새를 맡고 만지고 맛보고 듣는 세상, 그러니까 일상의 삶이 펼쳐지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에 도달하는 깊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곳임을 알고 있었다. 세계적 사고란 전자기술이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며 아예 모르느니만 못한 설익은 지식을 낳을 뿐이다.
“어제는 엄마 부엉이가 애기 부엉이들에게 토끼를 먹이로 줬어요. 토끼가 불쌍해요!” 수즈가 말했다. “토끼는 원래 부엉이의 먹이란다. 우리는 서로를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지. 죽음에서 생명이 시작하는 법이야.” 할머니가 대답했다. 할머니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깨달았는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내색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새삼 강조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테니까.
“이 숲에는 542그루의 나무가 있어요. 작은 나무들은 빼고요.” 숫자와 과학을 좋아하는 라일리가 말했다. “아마 저 나무처럼 대부분 히코리 나무들이겠지.” 할머니가 짐짓 모르는 체 물었다. “할머니, 저건 히코리가 아니라 물푸레나무예요.” 라일리가 학생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선생님처럼 살짝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런가?” 할머니는 얼굴에 번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며 놀란 듯 물었다. 손자들은 이미 대부분의 고교 졸업생들보다 진짜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럼, 저기 저 나무는 백참나무겠구나.” “아뇨. 적참나무예요. 나뭇잎이 둥글지 않고 뾰족하잖아요.” 수즈가 대답했다. “그럼 똑똑한 너희가 저기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작은 나무가 뭔지 할미한테 알려주련?” 두 아이 다 몰랐다. “나도 모르겠구나. 그럼 저 나무를 뭐라 부를까?” 할머니가 말했다. “이름 없는 나무라고 불러요.” 수즈가 말했다. “그거 좋구나.” 할머니가 맞장구쳤다. “교육이라는 것의 절반은 그냥 이름만 배우다 끝나지. 하지만 이름을 안다고 그것에 대해 아는 건 아니란다. 저 꽃에서 무엇이 나오나 지켜보자꾸나.”
그러는 동안 세 사람은 시냇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할머니가 조심스레 강둑을 따라 길을 찾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걸음을 멈춘 할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냇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사라져 버렸네. ‘노래하는 시내’가 홍수에 휩쓸려 가버렸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수즈가 궁금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바로 여기였단다. 시냇물이 저기 조용한 웅덩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지는 곳에 바위들이 있었지. 물이 그 바위들을 통과하면서 작은 폭포와 급류들을 만들었단다. 시냇물이 바위를 만나 철벅대고 자그락거리고 콸콸대면서 음악을 만들었어. 그래서 내가 너희들만 할 때 이곳을 노래하는 시내라 불렀던 게야.” 세 사람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을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문득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이건 어떨까? 우리가 시냇물이 다시 노래하게 만드는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장화와 양말을 벗고 바지와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강둑과 시내 바닥의 돌을 들어 빠른 물살 속으로 풍덩풍덩 던져 넣었다. 곧 할머니의 손길에서 작은 급류들이 탄생했고 시냇물이 철썩대고 자그락대며 재잘거렸다. “자, 어떠냐? 이제 음악이 시작되는 걸 들을 수 있지. 돌을 더 던져 넣으면 교향악도 들을 수 있단다. 요기에 바이올린 몇 대, 저기에는 트롬본과 플루트, 저 멀리에는 피아노.” 아이들은 할머니의 말을 금방 이해했다. 돌을 주워와 시내 바닥에 내려놓고는 시냇물 음악의 전문 작곡가가 된 것 마냥 할머니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로 심사숙고했다.
“자, 할머니.” 라일리가 지시했다. “어느 소리가 더 좋은지 잘 들어보세요. 이 초록 바위를 여기에 놓고 이 회색 바위를 그 뒤에 놓을까요?” 할머니가 소리를 듣는 동안 라일리는 잠시 멈추었다. “아니면 이렇게 위치를 바꿀까요?” “초록 바위를 조금 왼편으로 옮기면 좋을 것 같구나.” 할머니가 충분히 듣고 나서 대답했다. “그러면 음악이 좀 더 경쾌하게 재잘거릴 것 같은걸.” 수즈가 환하게 웃더니 들기도 힘든 큰 바위를 굴려 와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여기에서는 자그락대는 소리가 충분하지 않아요.” 수즈는 그 큰 바위를 다른 바위 가까이 옮겨놓았다. “아, 여기에요! 이제 진짜 시내처럼 콸콸 흘러가요.”
바위에 철썩대며 흐르는 물만큼이나 빠르게 한 시간 동안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지나갔다. 세 사람은 물을 뚝뚝 흘리고 진흙을 여기저기 묻힌 채 기진맥진해서는 만족스럽게 강둑에 앉아 자신들이 만든 교향악을 들었다. 노래하는 시내가 복원된 것이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들려요. 시냇물이 ‘양키 두들 댄디’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요.” 수즈가 말했다. “어쩌면 그냥 말을 하는 걸지도 몰라요. 물고기한테. 아니, 어쩌면 우리한테 뭔가 말하는 게 아닐까요?” 라일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시냇물은 사실 노래하는 게 아니야. 그냥 흥얼거리는 거지.” 수즈가 단호하게 말했다.
“글쎄다. 나는 단어나 곡조는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할머니가 학교 선생님처럼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듣기에 첫 번째 급류는 ‘자그락 자그락, 철썩 졸졸 철썩’하고 노래하는 것 같고, 두 번째 급류는 그걸 더 빨리 반복하는 것 같구나. ‘자그락자그락, 철썩졸졸철썩’ 이렇게 말이다.” 세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혀를 빨리 움직이며 그 소리를 반복해서 흉내 냈다.
자그락 자그락
철썩 졸졸 철썩
자그락 자그락
철썩 졸졸 철썩
이렇게 세 번을 부르더니 할머니가 덧붙여 노래했다.
바위 너머로
물길이 피리를 불며 가네
그러자 라일리가 맞장구를 치며 새로운 가사를 붙였다.
바위 아래로
가재가 기어가네
이에 질세라 수즈가 덧붙였다.
바위 주위로
작은 물고기가 첨벙대네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시냇물의 노랫소리와 어우러지며 희망의 찬가가 되어 울려 퍼졌다. 만약-아, 만약에- 이 메마르고 상처 입은 세상 속 조용하고 외딴 곳에 어린 아이처럼 경이와 평화로 가득한 할머니들이 더 많다면, 세상 모든 이가 노래하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찬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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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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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며 | 나로부터 일으키는 혁명 - 스콧 새비지
1 자유롭기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유를 되찾기
흙humus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human
집에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
2 창조하기
소유를 줄이고 향유를 늘리기
그냥 좋은 일
내 손으로 집 짓기
단순하고 아름다운 도구 예찬
햇볕과 바람의 손빨래
3 치유하기
치유,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
아이를 낳는 가장 안전한 방법
내 몸에 대한 결정권
하루 세 번, 식탁 위의 축제
4 노래하기
컴퓨터 밖의 진짜 세상
텔레비전에 도둑맞은 시간
라디오를 끄고 침묵을 되찾다
기업과 기계의 지배에 맞서
5 서로 돕기
사라져가는 마을 광장
어느 날 마차를 사다
아미쉬와 함께 한 하루
함께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자급자족의 영토 넓히기
6 지혜롭기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서두르지 않아도 스스로 배운다
학교가 빼앗아간 아이들의 시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메마르고 상처 입은 이 세상에
옮긴이의 글 | 소박한 삶에 대한 에세이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